제12회 권환 문학제…시인 작품 공부 모임·카프문학 기행 제안

뒷산

- 권환

거꾸로 박힌 심장형(心臟形)

누런 밤나무 잎이

시냇물 되어 흐르는

뻐꾹새 우는 소리

여기저기 들리는

내 고향의 뒷산

나는 온 하루 밤을 자지 못했다

그 산 이름을 생각해 내려고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을

권환문학제에서 문인, 지역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마산과 카프 예술가들'이라는 주제로 문학좌담이 열렸다.

◇쓸쓸한 권환의 흔적 = 권환기념사업회가 제12회 권환문학제를 14~15일 개최했다. 지난 14일 문인, 연구자, 대학생, 인근 주민, 유족 등 30여 명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깜빡 잊어버린 그 이름'인 보강산에 올랐다. 권환 시인과 그의 아내가 묻힌 묘가 나란히 있었다. 안동권씨 문중의 납골당 뒤편이다. 생전에 살았던 집터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멧돼지가 후벼 파놓은 무덤은 더없이 쓸쓸했다.

유택(무덤) 참배 전 들렀던 생가터는 을씨년스러웠다. 진사골목이라 불렸던 골목길 옆에 집터 일부만 남아있었다. 텃밭으로 사용되는 생가터는 디딜방앗간이 있었던 자리에 낡은 건물만 남았다. 잡동사니가 뒤엉켜 있는 폐허는 흐린 날씨가 더해지자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래된 우물 자리와 감나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을 설명을 듣지 않으면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응인(맨 오른쪽) 시인이 '지역 문학과 문학 실천'이라는 주제로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경행재에서 치러진 소규모 문학제 = 권환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문학제 행사는 오서리 경행재에서 진행됐다. 경행재는 안동권씨 문중 회계서원의 지원(支院)으로 1867년 3월에 세워졌다. 건립 초기에는 문중의 재실로 사용되다가 1910년부터 사립 경행학교의 교사로 쓰였다. 권환 시인의 부친인 권오봉 선생이 설립해 지역 신교육의 전당,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활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권환 시인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죽헌 이교재 선생, 카프 미술분과와 영화분과에서 활약한 강호 등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경행재에서 청도 화정다례원의 다도 시연, 대학·일반부 백일장, 이응인 시인의 문학 강연 등을 했다.

◇"실천 문학인 사업 함께 하자" = '집'을 소재로 하는 시를 쓰는 백일장이 치러지는 사이에 '마산과 카프 예술가들'을 주제로 한 문학좌담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권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송창우 시인의 사회로, 배대화 경남대 국문과 교수, 한정호 경남대 교양기초교육원 교수, 양운진 권환기념사업회 회장, 지역 문인 등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했다.

송창우 시인은 "권환 시인은 카프의 맹원으로 실천적 사상가였다. 과거부터 이어온 우리 지역 실천 문학의 장을 마련하면 좋겠다. 경남대에서 카프와 지역 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임화 시인이 살던 집, 권환 선생이 돌아가신 완월동 집, 강호 생가지 등을 묶어서 카프 문학 기행지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권환 생가터.

배대화 교수는 "남북통일이 되면 통일한국문학사를 아우를 수 있는 시발점이 필요하다. 그게 카프 문학이다. 권환 시인이 활동한 카프 문학이 근대문학 출발점이다. 권환 선생 이후 정진업, 이선관 시인 등이 현실주의 문학을 이어오고 있다고 본다. 권환, 정진업, 이선관 시인 등을 함께 기념할 수 있게 힘을 모을 단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권환 시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문제가 급선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문학제 행사가 축소돼 안타깝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응인 시인은 "권환 시인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권환 시인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백석의 시가 크게 알려진 데는 시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백석의 시에 빠진 사람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환문학제는 15일 경행재∼권환 시인 생가터∼오서리 들녘∼권환 시인 무덤∼월안교와 용대미∼곡안리 마을숲∼성주이씨 재실∼봉곡리 강호 감독 생가터를 둘러보는 문학길 산책 행사로 마무리됐다.

경행재에서 일반부, 대학생이 '집'을 소재로 한 시를 짓는 백일장을 치렀다. /우귀화 기자

지난 2006년 권환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추진됐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건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권환기념사업회 측은 올해 시에서 지원받는 예산이 360만 원이고, 내년에는 비영리 단체로 등록할 경우 3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영리 단체 등록 요건이 안돼 그마저도 받을 수 없어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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