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상상력 더해 생명 얻은 지역이야기, 이것이 답

함안 성산산성, 작업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호미와 삽을 든 연구원 6명이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발굴에 힘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발굴조사로 모두 피곤하지만 성곽 내부 저습지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 덕에 힘을 내고 있다.

그런데 조수연 수석연구원은 며칠째 머리가 어지럽다. 고대 아라가야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말이산고분군 발굴 때부터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아라가야 공주는 "튼튼한 꽃대가 올라와서 푸른 하늘을 향해 개화하는 꽃씨를 찾아주세요"라고 말한다.

조 연구원은 눈을 비비며 현시에서도 꿈에서도 헛것이 보인다고 중얼댄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녀는 자료 전문 김유진 연구원에게 꽃씨의 흔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시간은 과거를 향해 내달려 아라가야가 패망한 시대. 마지막 후손 아라가야 공주는 신라 왕자를 만나 간곡히 부탁한다. 우리를 잊지 않도록 연꽃씨를 성내에 심어달라 간청한다.

시간은 다시 오늘을 가리킨다. 연구원 6명은 허리를 굽혔다 펴며 발굴조사에 집중한다.

함안 극단 아시랑은 3년간 발굴하고 제작한 지역 문화콘텐츠 <아라홍련>을 오는 17·18일 이틀간 오후 3시·7시 30분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공개한다. 11일 극단 아시랑 배우들이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어, 진흙층이다. 공기가 없다. 이게 뭐지?"

이들은 잘 싸인 주머니를 들고 성산산성에서 조사 캠프로 이동한다. 그리고 주머니를 펼치고서 환호한다.

"아! 연씨들이다. 우리가 해냈어. 해낸 거야."

함안 극단 아시랑의 창작초연극 <아라홍련>(작 윤조병·연출 손민규)을 살짝 들여다봤다.

극단 아시랑은 3년간 발굴하고 제작한 지역 문화콘텐츠 <아라홍련>을 오는 17·18일 이틀간 오후 3시·7시 30분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공개한다.

지난 2009년 함안에서 연씨 10알이 발굴됐다. 그해 5월 가야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한 '제14차 성산산성 발굴조사' 현장에서였다. 군은 '아라홍련'이라고 이름 붙였고 700년 만에 출토된 씨앗은 이듬해 연꽃을 피웠다. 아라홍련은 고려시대 것으로 확인됐다.

극단 아시랑은 연극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함안에 뿌리를 두면서도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러다 극작가 윤조병 선생을 만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 아라홍련에 아라가야를 입히자고 했다. 700년 전 고려시대와 더 앞선 800여 년 전 아라가야를 연결하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상상력. 윤 작가는 "아라가야의 길고 긴 역사와 과학에 상상의 자유와 창조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함안박물관 앞 아라홍련 시배지에 핀 연꽃. 지난 2009년 성산산성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씨의 싹을 틔워 조성해 놓은 곳이다. /경남도민일보 DB

이에 연극 <아라홍련>에서 연구원들은 메마른 산성에 어떻게 씨앗이 있을 수 있는지 묻는다. 이들은 고려시대를 거슬러 성산산성에 연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아라가야 공주와 신라 왕자가 만나는 게 필연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준비 중인 함안군에 힘을 실었다. 차정섭 함안군수는 "아라홍련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극단 아시랑은 이를 극작품으로 승화했다. 함안 대표 역사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민규 연출가는 "극단의 숙원이었던 지역문화콘텐츠 발굴 창작 초연 작품이 피어나게 됐다. 극단의 열정과 의지만으로 작품을 제작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윤조병 선생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힘이 컸다. 창작 1탄 <아라홍련>을 시작으로 함안에 숨어 있는 여러 콘텐츠를 무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아라홍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후원하는 '2015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으로 진행된다. 해당 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을 스토리텔링한 단체는 통영 극단 벅수골과 큰들문화예술센터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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