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에게서 빛을 되찾은 저항의 전설이 숨쉬는 곳

이맹산이 언제 이명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로 고친 이름이 옛것보다 더 좋은 것이 참으로 드문 일이어서 반갑기까지 하다.
‘눈멂을 다스렸다’는 데에서 ‘밝아지도록 다스렸다’는 데로 옮아가는 상상력이 도대체 신통하지 않은가.



하동군 북천면과 사천시 곤양면을 갈라주는 산이 이명산(理明山)이다. 북천면 아래 남쪽으로는 하동군 진교면이 이명산을 떠받치고 있다. 높이가 57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흔하지 않은 전설을 안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이명산 관련 기록에는 고개와 굴의 이름에서 이맹(理盲)이라는 말이 나온다.‘눈멂을 다스린다’는 뜻인데,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당시 동경산(東京山)이라 했던 산의 꼭대기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못에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독기를 뿜을 때 고개를 남쪽으로 틀면 진교 사람, 북쪽으로 틀면 북천 사람 가운데서 장님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무기에게 잘 보이려고 철 따라 제사를 드리고 해마다 처녀를 공양했건만 재앙은 끊이지 않았다.
다른 많은 전설들처럼 신통력 있는 스님이 나타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는 물리치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무기가 사는 연못에다 불에 달군 돌을 넣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북수북 쌓이도록 던져 넣어야 했으니, 하면 된다는 믿음과 함께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 엄청나게 공력을 들여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불에 달군 돌이라지만 어떻게 못물을 끓게 할 수 있겠냐” “이무기만 더 사납게 만든다” “스님 말이라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등등 말이 오갔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장을 떠나지 않을 바에야 다른 방도가 없다고 여기고 나서게 됐다.
어떤 이는 돌을 산 위로 날랐고 다른 사람은 꼭대기에다 아궁이를 만들어 돌을 달궜으며 나머지는 불에 단 돌을 물에다 집어넣었다. 한 달이 되자 못물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사흘이 지나자 끓어올랐다. 지성이면 감천, 용기 백배한 사람들은 신명이 나서 돌이 쌓이도록 집어던지자 마침내 이무기가 연못을 뛰쳐나와 달아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시 해석해 보면 농민항쟁쯤으로 여겨도 괜찮겠는데, 재물과 인신 공양을 다그치는 이무기는 탐관오리의 상징이겠고 돌과 산은 저항의 무기나 근거지로 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맹산이 언제 이명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로 고친 이름이 옛것보다 더 좋은 것이 참으로 드문 일이어서 반갑기까지 하다. ‘눈멂을 다스렸다’는 데에서 ‘밝아지도록 다스렸다’는 데로 옮아가는 상상력이 도대체 신통하지 않은가.
전설을 새기며 언덕을 타고 오른다. 등산길은 북천면 소재지에서 하동 쪽으로 조금 더 나가 있는 직전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을 왼쪽으로 둘러 골짜기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면 된다. 다시 20분 남짓 걸어가다 만나는 고개를 넘어 다시 20분쯤 가면 절터가 나온다.
석불사지라고 하는데 지금은 천장이 무너져 내린 상태라 크기와 모양을 알 수 없지만 경주 석굴암과 사천 다솔사 보안굴과 맥락을 같이하는 석굴이었다고 한다. 부근에는 또 비바람에 몸통은 닳아버렸지만 얼굴 모양은 그래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 마애불상도 있다.
여기서 산마루까지는 또 20분 정도 올라야 한다. 그런데, 가면서 보아하니 작은키나무들이 꽃망울을 물고 있다. 하나둘이 아닌 것이 솔숲 아래로 꼭대기까지 쫙 펼쳐져 있다. 소리를 내며 쏠리는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무리 지어서 좁다란 산길조차 덮어버릴 기세다. 아마 한 달쯤 뒤에 오르는 산길은 철쭉의 짙은 분홍과 연두.초록이 범벅되어 사람을 반길 것이다.
산마루에 이르면 바람이 시원하다. 탁 트인 사방으로 짙은 녹색을 한껏 담은 산들이 다가선다. 저 멀리 아래 풍경도 좋으련만, 바람에 날리는 먼지 때문에 눈앞이 흐려 아쉽다.

△가볼만한 곳-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직전마을

하동군 북천면은 산간 지대에 자리잡은 분지다. 추울 때는 더 춥고 더울 때는 더 더운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반면 가뭄.홍수.태풍이 들지 않는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청학동이 여기서 가까운 데 있는 까닭도 모두 여기에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들판을 흐르는 바람이 지금은 조금 차다. 하지만 보름만 지나도 아지랑이를 흔들며 달려와 지나는 이들의 몸에 휘감길 것이다.
직전 마을은 이런 들판 가운데 있다. 뒤로는 이명산 끝자락을 밟고 있지만 왼쪽에서 감아도는 냇물이 있어서인지 마을이 산과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마을의 자랑은 왼쪽에 있는 솔숲과 대숲이다. 두 아름은 될 듯한 소나무들이 높이높이 뻗어 올라 시냇가에 버티고 섰다. 40~50그루는 돼 보이는데 쳐다보는 고개가 다 아플 지경이다.
위에서 이리저리 가지를 벌리고 섰는 모습이 한눈에 가득 차 안긴다.
게다가 솔숲 따라 나 있는 길 오른편에는 약간 무너져 내린 돌담이 이어지는데, 안쪽으로는 새로운 빛을 뽐내는 대나무가 소담스럽게, 조용히 우거져 있다.
솔숲과 대숲, 오솔길과 돌담의 조화라, 처음 보는 사람은 저절로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이런 솔숲이 민가 가까이에서 여태껏 살아 남았다는 게 고맙고, 이런 솔숲을 이고 나날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다.
열흘이나 보름쯤 뒤에 이곳을 찾는다면, 길 옆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따뜻한 햇볕을 담뿍 즐길 수도 있겠다. 물론 지금 당장도 가능은 하겠지만, 바람이 좀 쌀쌀한 편이어서 아이들 데리고 나선 길에는 크게 권할 만하지는 않다.
대신 한창 밭갈이를 하고 있는 논과 밭의 두렁을 따라 가보면 다른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풀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야말로 쑥과 냉이가 우거져 있는 것이다.
쑥은 자란 상태도 좋아 더할 나위 없고, 냉이는 크지는 않으나 뿌리째 뽑아 냄새를 맡아보니 싱그럽기 그지없다. 다닥다닥 모여 있어 칼만 있으면 캐기도 어렵지 않다.
집안 식구끼리 이명산을 골라 오른다면, 산 들머리 이 곳 마을 숲에서 반나절은 좋게 시간을 보내도 되겠다.


△찾아가는길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명산에 가려면 하동군 북천면 소재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진주서 북천 가는 버스는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 첫차 오전 7시부터 막차 오후 8시 40분까지 40~50분마다 1대씩 다닌다. 진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8시 30분이 막차니까 북천 정류장 매표소에서 먼저 물어본 다음 산에 오르는 게 나을 듯 싶다.
마산에서는 교통편이 좋지 않다. 하동 가는 버스는 아예 없고 진교 가는 것만 14대 있단다. 그러니 아예 5분마다 있는 진주행 버스를 타고 가서 북천행으로 갈아타는 게 오히려 낫다.
산간 오지이긴 하지만 기차도 있다. 경전선인데 하루에 네 번 오간다. 진주를 기점으로 오전 8시 27분과 오후 3시 25분.6시 35분.9시 18분에 있는데 막차를 빼고는 마산에서도 탈 수 있다.
북천에서 진주로 나오는 차는 오전 6시 28분.7시 12분.10시 16분과 오후 5시 55분에 북천을 떠난다. 가는 열차편과는 반대로 첫차만 진주서 멈추고 나머지는 마산까지 나온다.
자동차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산이나 창원이나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교 나들목으로 빠져 나오면 그만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고 나와 마주치는 신호등에서 비보호로 좌회전해서 길 따라 죽 이어 달리는 것이다. 꼬불꼬불 이어지면서 고개를 넘는 1005호 지방도인데 지도에도 안 나오는 새로 닦은 길이다.
오른쪽으로 보안암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나서 조금 더 가면 고개가 나온다. 왼쪽이 이명산,오른쪽이 봉명산이다. 물론 여기에다 차를 세우고 왼쪽으로 더듬어 30분쯤 올라가도 산마루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이명산의 참맛을 보려면 여기서 다시 아래 마을까지 내려가 북천초등학교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좌회전, 직전 마을까지 들어가야 한다. 직전 마을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골목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다 해도 쉽사리 차를 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손수레도 못다닐 정도로 길이 좁아지는 데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어 ‘원상 회복’하려면 진땀깨나 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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