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4편

◇생장에 모인 순례자들

바욘 터미널에 있자니 순례자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인 것 같더라고요. 이제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생장으로 가는 한국에서 온 부부와 딸을 만났는데 이들은 까미노는 한 열흘 정도만 걷고 관광을 할 예정이라는데 정보도 별로 없다고 하고 너무 유약해 보이는 딸 때문에 내가 괜히 걱정되었답니다.

순례자를 가득 태운 버스가 출발했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버스는 생장을 향하고 있었어요. 너무 깨끗하고 예쁜 풍경이 벌써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생장 옛 요새 성벽에 선 박미희 씨.

한 시간 남짓 바깥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생장에 도착하더라고요. 버스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떤 남자 둘이 성큼성큼 먼저 가는 거였어요. 뭔가 알고 가는 것 같아서 우리도 따라갔죠. 아니나 다를까, 빙고~! 그 사람들은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거였어요. 덕분에 우리는 줄을 많이 서지 않고 접수를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친절한 봉사자들 앞에 한 명씩 앉아 접수를 하고 크레덴시알(순례자용 여권인데 가는 곳마다 도장을 받고 그것을 보고 다 걸은 후 순례자 증서를 준답니다.)을 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도 하나 사서 배낭에 달고 나니 비로소 순례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죠.

협회에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인 저렴한 숙소로 크레덴시알이 있어야 묵을 수 있다. - 편집자 주)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근방의 한 집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두 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사무실에 가방을 맡겨 놓고 부근 구경을 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알베르게 앞에 서 있으니 한국인 부부 팀도 오더라고요. 추천을 받은 곳이라서 괜찮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어서 들어 가보니 이미 다 전화로 예약이 되었다고 미안해합니다. 나 원 참~! 그럼 문앞에 그렇다고 써 놨어야지 좀 황당했지만 다른 알베르게를 구할 수밖에요. 나와서 몇 집을 다니다가 성당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로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두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전에 가려고 했던 알베르게보다 더 친절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프랑스 생장에 있는 순례자 사무소 내부
프랑스 생장에서 박미희 씨가 묵은 순례자 숙소(알베르게)

◇마을 축제를 구경하며

한국인 부부팀은 사온 음식이 너무 많아 먹고 출발해야 한다며 해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고 10명이 묵는 도미토리에 우리는 맨 먼저 짐을 풀고 씻고 시내로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마을이 아주 예뻤고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앞에 내 놓은 꽃들을 보며 여기 사는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성 같은 곳이 있어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생장은 다소곳하니 참하게 생긴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또 냇가를 따라 산책하며 언니와 많은 이야기도 주고받았지요. 오는 길 음악 소리에 이끌려 찾아 가보니 마을의 작은 축제가 있는지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들 두어 팀이 각자 다른 악기로 곡을 연주하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제법 옷도 갖춰 입었고 학부모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도 찍고 하는 걸 보며 부모들의 관심이 아이들을 잘 성장시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마을 한편 무대에서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밴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들이 나와서 공연을 보고 있었고 꼬맹이들도 형들이 부러운지 무대 앞에서 턱을 받치고 보고 있는데 너무나 귀여웠어요.

마을 축제에 밴드로 나선 아이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알베르게에 가니 봉사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 생장의 알베르게는 주로 숙식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 많았어요.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그래도 이곳은 가격도 저렴한 편에다 음식 맛도 괜찮았고 거기다 친절하고 우리에게 관심도 많이 둬줘서 고마웠답니다. 열명 정도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중에는 산티아고를 거꾸로 걷고 생장이 마지막 날인 부부가 있어 놀랍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나는 미국언니가 없었더라면 벙어리 신세였을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온 시몬이라는 아줌마도 만났습니다. 식사 후 모두 함께 설거지를 했고 즐겁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늘이 음악페스티벌 하는 날이라네요. 어쩐지. 식사 후 다시 밖에 나가니 아까 그 무대에서 어른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어요. 우리도 조금 구경하다 들어오다 보니 순례자 복장을 한 사람과 해설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말로 하니 알아들을 수는 전혀 없지만 아마 순례자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해 보았답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오후 10시가 제한 시간이랍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죠. 이곳은 해가 10시나 되어야 지니 아직 밖은 환해요. 어둡기도 전에 자려고 하니 잠은 안 오지만 그래도 내일,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첫날을 위해서 잠을 청해봐야겠죠. /박미희

<편집자 주>

△크렌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증명서다. 순례를 시작하는 곳에 있는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서 발급받는다. 순례길에 있는 숙소나 카페에 가면 스탬프를 찍어 주는데,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서 이걸 근거로 순례자 증명서를 내준다.

△알베르게(Albergue) - 마을마다 있는 순례자 전용 숙소. 크레덴시알이 있어야 숙박을 할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와 민간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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