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정말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수다스럽게 이야기 나누고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서로 그대로라며 반가워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친구였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내 이름이 불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일을 할 때도 의외로 이름이 불리는 적은 없는 것 같다. 김 작가님. 작가님. 그러다가 일을 잠시 쉬면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온전히 불러줄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가 둘이 되고, 어느새 난 누구 엄마가 되어 있었고, 신랑 모임을 나갈 때면 누구 부인이 되어 있었고, 결혼을 한 뒤론 누구의 며느리. 슬프지만 아예 호칭도 없이 아줌마라고 불릴 때도 허다하다. 어느 새 나도 누구 엄마로 불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전화번호 저장할 때도 상대방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로 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윌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구누구엄마로 불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러다 사이가 조금 가까워지면 거기서 엄마는 빼버리고 바로 그 아이의 이름으로 엄마를 부른다. 내 이름은 '성애'인데 내 아이가 '도현'이라면 친한 엄마들은 나를 바로 '도현아~'라고 부르는! 그게 엄마들 사이에선 자연스러운 호칭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가까이 지내던 아기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언니는 이름이 뭐예요?" 이젠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게 익숙해졌나보다. 그 엄마가 "이름이 뭐예요?" 라고 물어봤을 때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당황한 표시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 이름을 내가 스스로 가르쳐주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그래. 내 이름은 김성애인데. 굳이 사람들한테 누구 엄마 누구 부인이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할 필요 없었는데. 지금까지 왜 그렇게 했을까.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나에게 조용한 변화가 생겨났다. '이제부터 친한 엄마들에게 이름을 불러줘야겠구나.' 누구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던 내 휴대폰 주소록부터 이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이름을 기억하고 한번이라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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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아줌마가 되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제 내 이름을 풀 네임으로 불러주는 사람은 택배 아저씨밖에 없다고.

누구엄마로 부르다가 이름을 부르는 시작은 어색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처음엔 이상하지만 마음이 통하고 친해진 사람들과 이름이 불리는 일! 나 자신을 찾는 것임과 동시에 유쾌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일이니 우리 모두 친한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서로 이름을 불러주자. 

/김성애(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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