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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밤 아니면 어떠랴 월연대는 언제나 멋지다

[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6) 밀양 월연대~얼음골옛길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5년 11월 09일 월요일

2015년 마지막 생태·역사기행은 가까운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은 산도 좋고 들판도 좋고 인물도 좋은 고장이다. 자연과 인물이 어우러지니 그럴 듯한 문화유산은 절로인 듯 생겨난다. 아침 8시 40분 창원 만남의 광장을 출발한 일행의 발걸음이 처음 닿은 데는 월연대였다.

월연대는 밀양강이 동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가지산에서 시작된 동천은 재약산에서 발원한 단장천을 쓸어담으며 몸집을 부풀린 다음, 월연대 앞에서는 밀양강 물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물과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언제나 흐름이 느린 법, 그 언저리에는 습지가 너르게 펼쳐지고 강물은 연못(淵)처럼 잔잔하다. 여기 이름 월연(月淵)은 이렇게 생겨났다. 보름 밤이면 둥근 달이 어리는 모습이 더없이 멋지다는 얘기다. 그것도 둘씩이나, 동천에 하나 밀양강에 하나. 하지만 보름밤이 아니라도 월연대는 언제나 멋지다.

조선 중기 이태라는 양반이 여기 별장을 짓고 살았다. 강가를 향해 튀어나온 바위가 낭떠러지를 이루는 형상이다. 그 꼭지에 정자를 앉히고 이름을 월연정이라 일렀다. 강물을 따라 흐르는 아래쪽에는 묵을 집 두 채를 지었는데 그 하나가 쌍경당(雙鏡堂)이다. 여기 거울(鏡)은 강물에 비친 달을 이른다. 마루에 앉아 현판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눈길을 앞으로 돌렸더니 과연 그러했다. 건물 바깥에서도 바라보는 풍경이 그지없었는데 한 채 정자와 두 채 건물 자리에서 보니 더 멋졌다. 일행은 다들 따스한 햇살 아래 조그마한 탄성을 자아낸다.

밀양 월연대.

월연대는 건물과 풍경도 좋지만 나무도 멋진 친구가 많다. 정자 아래 평지와 언덕에 자리잡은 배롱나무는 이제 길고 화려했던 꽃을 떨구고 잎마저 떠나보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연륜을 굵은 둥치로 드러내보인다. 또 한림이공대(翰林李公臺)라 오목새김된 바위 너머에는 백송이 한 그루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보는 나무다. 껍질이 소나무답지 않게 거칠지 않으면서 흰 빛이 난다. 바로 옆 은행나무도 멀리서 보니 그럴 듯하고 들머리에서부터 이어지는 오래 된 활엽수들도 사철 구분 없이 멋지다.

이어서 예림서원. 밀양 출신으로 조선 시대 사림의 조종(祖宗)으로 일컬어지는 김종직을 모시는 서원이다. 이름도 예쁘고 둘레 풍경도 처지지 않으며 경내 분위기 또한 퍽 소박하면서 단아하다. 시간을 길게 들이지 않아도 전통 서원의 풍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문 노릇을 하는 독서루를 지나면 오른편 열고각에는 목판들이 보관돼 있고 왼편에는 몽양재라는 건물이 있는데 '아이(蒙)를 기른다(養)'는 뜻에 비춰볼 때 당대 학생들 가운데 나이가 어린 축에 드는 이들이 묵었던 곳이지 싶다.

예림서원.

축대를 하나 더 오르면 중심 공간이다. 소나무와 산수유가 받쳐주는데, 동재는 돈선재고 서재는 직방재다. 착함(善)을 두텁게(敦) 하자는 뜻이고 곧고(直) 반듯하게(方) 살자는 뜻이다. 진리는 먼 데 있지 않다. 그리고 복잡하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김종직은 <소학(小學)>을 으뜸 교재로 삼아 읽고 공부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요즘으로 치자면 학생들 기숙사이니, 이런 현판에 담긴 뜻은 그러니 교훈(校訓)쯤이 되겠다.

가운데 건물은 교실과 교무실을 겸한다. 일신재(日新齋)와 시민재(時敏齋)는 옛날 선생님이 머물던 곳이고 구영당(求盈堂)은 강당인데 지금으로 치면 교실이다. 구영은 모자람이나 이지러짐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데,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한테 충분히 가치로운 목표라 하겠다. 강당 구석자리 옛적에 썼음직한 오래 된 예림서원 현판에까지 눈길을 던진다. 그보다 위에 있는 사당 육덕사(育德祠)는 공개되지 않는 제사 공간이니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독서루 2층 누각에 올랐다. 아래위로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옛날 손님 맞이도 하고 풍류도 즐기고 공부도 하고 하기에 걸맞은 공간이다. 여기는 그늘이 짙다. 잠깐 몇 마디 얘기 나눴을 뿐인데도 은근히 추워질 정도다. 그늘이라 그런 모양이다. 바깥은 햇볕이 따사로운데도 그렇다. 가을 햇살 개햇살이다.

가까이 밥집 흑담에서 비빔밥을 맛나게 먹은 다음 호박소로 향했다. 단풍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씩 색깔을 달리하며 잎사귀가 물들어가는 모습이 은근히 괜찮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가까이서 보는 가을 나뭇잎은 그랬다. 또한 풍경 자체가 워낙 빼어난데다 산길이 산길답지 않게 가파르지 않고 무척 평탄한 편이어서 호박소 언저리 위쪽이나 또는 오천평바위까지 바람소리 물소리와 더불어 이리저리 거닐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호박소.

호박소 둘레는 빠져 숨을 거두는 사람이 해마다 생겨나는 바람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통제가 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위쪽이나 아래쪽도 골짜기와 바위가 못지 않게 좋다. 그런 너럭바위에 올라 앉아서 따뜻한 햇살 따라 볕바라기를 하노라면 저절로 저기 나무처럼 단풍이 들 것만 같은 느낌까지 뭉개뭉개 생겨나는 것이다.

1시간 30분 가량 이렇게 노닌 일행은 마지막으로 얼음골옛길로 간다. 얼음골 들머리에서 동명복지회관까지 2.5㎞ 남짓한 길은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자동차 소음 없이 사고 걱정 없이 사람이 활개치며 걸을 수 있는 한적한 길이 옛날에는 몰라도 요즘은 썩 드물다. 가깝고 먼 주변 풍경도 나쁘지 않다. 벚나무 가로수와 바로 옆 사과밭 여물어가는 빨간 열매도 받쳐준다. 게다가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으면 사각사각하는 것이 그 뽀송뽀송한 질감으로 척추를 타고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2015년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마지막 루트로 손색없는 길이었다. 〈끝〉

호박소 단풍길.

*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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