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9) 고성 옥천사

때를 놓치기 전 사찰을 찾았다. 고요한 절은 날을 가리지 않고 품을 내어주지만 하늘 아래 곱게 물든 단풍은 이맘때여야 했다.

깊은 산 고성 옥천사(개천면)에서 가을을 쏟아내는 숲을 만났다. 옥천사는 연화산 자락에 있다. 사방이 산허리와 산머리다. 고성이 공룡발자국 화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들 사이 연화산도립공원 표지판을 따라가면 소박한 농촌 마을을 지나 옥천소류지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길이 오르막이다. 촘촘하게 선 훤칠한 나무가 길을 내준다. 예년보다 일찍 추워졌다는 일기예보처럼 코가 시큰거리고 시린 날이었지만 가을을 깊게 들이마셨다.

저만치 보이는 옥천사를 향해 오르니 문화재 관리인이 입장권을 내준다. 성인 1300원, 학생 1000원, 어린이 700원이다. 반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어르신 모습에 정갈하고 겸손한 마음이 스민다.

옥천사는 천년사찰로 전해진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졌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887년 건립)에 '쌍계사는 본래 절 이름을 옥천사라 하였으나 근처에 옥천사라는 절이 있어 헌강왕이 쌍계사라 고쳐 제액을 내렸다'라고 썼다. 옥천사의 천년역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긴 세월만큼 옥천사가 지닌 이야기가 많다.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을 교정하는 일에 큰 공을 세웠고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에 맞서 승려들이 의승군을 조직해 대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사찰답 800마지기를 소유했던 부찰이었다. 또 경남지역 독립운동 근거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3·1운동 전후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변상태와 이주현 등은 옥천사에 머물며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했고 승려들도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옥천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시야가 탁 트여 있지 않다. 극락교를 지나 왼쪽으로 들어서면 너른 마당이 나오는데 자방루가 대웅전이며 여러 법당을 보여주지 않는다.

불도를 닦는 누각인 자방루는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뜻을 지녔다. 경남유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됐다. 성벽처럼 대웅전을 보호하는 자방루는 시간을 거스르지 못한 듯하다. 현판과 단청그림이 아주 바랬다. 안으로 들어서니 희미해진 각종 기묘한 새 그림이 여기저기다. 100여 년 전 중수 당시 그렸다는 스님들의 솜씨가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자방루 뒤편으로는 좁은 마당을 두고 법당들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 밖에 서서 합장을 하고 목례를 올렸는데 따듯함이 전해졌다. 차가운 바깥공기와 달리 법당 안은 온기가 있다.

늦은 오후 밥 짓는 냄새가 사찰에 퍼진다. 산머리만을 두고 산허리는 그늘이다. 편백나무 숲에 있는 암자가 어두워 보인다. 손때 묻은 두꺼비 바위, 가족의 화목을 바라는 신도들의 글귀를 보니 어서 집으로 달려가 밥이 먹고 싶어졌다.

출발지였던 극락교에 다시 서니 천왕문을 지나가지 않았다. 대웅전으로 가는 정석이다. 낙엽이 소복한 돌다리와 돌계단에 오르면 넓은 마당에 우뚝 선 자방루가 눈앞에 있다. 길마다 운치가 다르다.

옥천사에서 하룻밤 묵고 싶다면 템플스테이를 하면 된다. 이달은 오는 7~8일, 28~29일 이용할 수 있다. 편백 숲을 걷고 산내 암자를 돌아보며 스스로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다.

배낭을 메고 산을 찾아도 좋다. 첫 등반이라면 옥천사에서 시작해 편백숲, 황새고개를 거쳐 옥천사로 내려오는 숲길이 가장 수월하다.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는 연화산을 오르면 하늘 아래 연꽃무늬처럼 배열된 경내 경관에 감탄한다. 또 연화산 계곡에는 공룡 발자국도 남아 있다. 공룡 발자국을 더 보고 싶다면 연화산도립공원 아래 공룡발자국화석지에 들르면 된다. 숙박업소와 식당이 모여있는 연화원 앞에 잘 꾸며져 있다.

형형색색 햇볕에 반짝이는 가을 정취가 아쉽도록 옥천사는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집으로 가는 길, 산 아래 황금 들녘은 아직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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