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4) 전·술국으로 먹었다는 '뱅어'…살빛 희어진다는 속설에 여자들은 계를 들어 사먹기도 했다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다. 당시 나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시행하는 남해군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만들고자 문화재조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2004년에 책이 출판되었으니 아마 2003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거의 매일 남해로 달려갔다. 한 번은 1박 2일로, 한 번은 당일 귀가를 원칙으로 하였기에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남해에서 숙박을 했다.

남해에는 음식을 나름대로 특이하게 해주는 귀한 집들이 더러 있었다. 읍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있는 백숙집은 맑은 닭국에 찹쌀을 넣고 끓이는 방식이 특이하였다. 군청 앞에 있는 지하 술집은 '아무거나 집'이었다. 그날 주인이 장에 가서 좋은 음식 재료가 있으면 그것으로 안주와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가격도 주인이 대충 정하여 말한다.

이와 비슷한 집이 또 있었는데 '대우식당'이라는 간판으로 기억한다. 할머니께서 혼자 일을 하시는데 손님이 고정적으로 많지가 않고 시장이 가까이 있어 손님이 오면 우선 먹을 것을 있는 대로 내놓고는 바로 장을 보러 가신다. 주인 할머니의 눈은 경륜으로 점철되어 있다. 첫째, 금방 온 손님의 나이와 취향을 대략 정한다. 둘째, 그들이 시킨 술 종류를 생각한다. 셋째, 가장 맛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식재료와 가격을 가늠한다. 그러고는 시장 전체를 마음 속으로 스캔하고 망설임 없이 발길을 옮긴다.

마산어시장 건어물 가게에 있는 뱅어포. 뱅어는 작고 가늘고 미끄러워 잡기가 어렵다. /이서후 기자

◇남해서 처음 본 백어, 실타래 같았다 = 내가 그 식당을 처음 방문한 날은 남해군에서 향토사학을 하시는 김모 선생님과 정모 선생님, 박모 선생님과 함께였다. 연세가 많으신 분은 70세 정도이고 적으신 분도 60세 정도이시니 한참 나이 차이가 나지만 스스럼없이 대해 주셨다. 그날도 저녁 자리를 논하다가 한 분께서 대우식당을 추천하셨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드시면 얼마나 드실까 하는 생각에 호기를 부리며 저녁 겸 술자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남해군청 앞 큰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은 미로에 가까웠다. 한참을 가서 주택 한쪽에 만들어진 작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이 전부였다. 식당 주인 할머니를 보자 이들이 건네는 인사도 주문도 아주 간단했다. 잘 오시다. 잘 계셨는가. 오늘 뭐 맛있는 게 있는가. 글쎄 시장에 가 보아야 알지. 그러면 먹을 것 챙겨놓고 장에 갖다 오시다. 할머니는 김치와 간단한 안주 한 가지를 차려놓고 술은 알아서 꺼내 먹으라고 하시곤 시장으로 달려갔다. 곧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 오시면서 무척이나 기뻐하신다. 오늘 백어가 나왔더이다. 그때까지 나는 백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비닐 봉지 안에서 꺼낸 백어는 하얀 실처럼 가늘고 길쭉한데 눈만 까만 점처럼 보였다. 뭉쳐져 있으니 마치 국수를 삶아서 타래를 지어 놓은 것 같이 보였다. 김려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인 <우해이어보>에서는 백어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면조옥어', 즉 국수가락처럼 생긴 옥빛 나는 고기라고 하였고 혹은 '비오'라고도 하였다. '비오'는 비가 오다는 뜻이다. <우해이어보>에서 말하는 조리법은 "이 물고기는 빙어와 비슷한데 조금 더 크고 비늘이 없다. 달걀과 오리알에 담갔다가 기름을 둘러 전을 부쳐 먹으면 매우 맛있다"고 하였다. 주인 할머니께서도 그렇게 요리를 해 주셨다.

잡은 백어를 햇볕에 말려 뱅어포를 만드는 모습. /연합뉴스

일은 그때부터 벌어졌다. 김 모 선생님께서 "이것을 먹으면 없던 힘도 나고 잠도 잘 안오고,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이니 해롭기 그지 없는 것이야" 하시면서 "해로운 것은 젊은 사람이 먹어야 한다"고 자꾸 보채셨다. 한 젓가락이면 백어 열 마리는 먹는 듯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백어 머리 수만큼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다. 같이한 사람이 5명이었는데 문지방 옆에 줄지어 선 술병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마셨다. 정말 백어는 몸에 해로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작고 가늘고 미끄러워 잡기 어렵다고 = 백어는 지역에 따라서는 뱅어라고도 하는데 뱅어는 바닷가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물고기이다. 뱅어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맛 때문만이 아니었다. 술국으로도 좋았던 모양이다. 이태원의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보면 "목사골 영감할멈은 이불 속에서 월하시(홍시)를 빨고 젊은 낭주골 사람들은 영산포에서 뜨내기로 배를 타고 목포로 내려가 여자를 꿰어차고 아침에 일어나면 술국으로 뱅어국을 들었다"는 말이 있다. 또 한때 영산강 지역 여자들 사이에 뱅어를 먹기 위한 계가 유행했는데 이것을 '뱅어되리(데이리)'라고 한다. 초겨울에 뱅어를 먹으면 속살까지 희어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뱅어의 흰 몸빛에서 우윳빛 살결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뱅어 잡는 장간반대. 말총이나 갈잎, 삼실로 촘촘히 엮은 베를 자루처럼 만들어 대나무에 씌운다. /박태성

백어는 작고 가늘고 미끄러워서 어살의 발과 그물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므로 잡기가 힘들다. 이곳 사람들은 말총으로 엮은 줄이나, 갈포로 엮은 가는 줄이나 거친 삼실로 베를 짜는데 가로줄과 세로줄 사이는 가는 쌀가루가 걸러질 정도다. 대나무 조각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베로 그것을 덮어씌우고 자루를 만든다. 대나무 통발을 엮은 것과 같은데 '반대'라고 불린다. 혹은 '여반대'라고도 하는데 두 가닥의 긴 대나무에 천을 덮어씌우는 게 마치 농가에서 흙을 옮기는 도구와 같아서다. 혹은 대나무로 한쪽이 높은 테두리를 만드는데 모양이 삼태기와 같아서 이름을 '소고반대'라고 한다. 해안지역 방언으로 삼태기를 소쿠리(小高)라 한다. 머리 쪽이 낮고 꼬리 쪽이 높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모두 얕은 물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대나무로 평평한 테두리를 만들어 긴 장대에 매어서 만드는데 그 모양이 잠자리가 장대에 붙은 것과 같아서 '장간반대'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깊은 물에서 사용하여 가느다란 물고기를 잡는다.

그러나 이 물고기는 조수의 앞머리에 여울져 급하게 휘감기는 곳에 있어서 밀물의 물살 특성에 숙련된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잡기 힘들다고 한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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