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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얼결에 온 시골, 처음엔 죽겠구나 싶었지요"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3) 합천군 적중면 신미숙·이용철 부부

하청일 기자 haha@idomin.com 2015년 11월 02일 월요일

뜻하지 않았지만 귀촌을 새로운 계기로 삼아 행복한 삶을 일구는 젊은 부부가 있다. 합천군 적중면에서 딸기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교육농장도 운영하는 귀농 14년 차 신미숙(46)·이용철(48) 부부다.

◇얼떨결에 남편 따라 귀촌한 도시 아내 = "2001년 귀촌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창원에서 회사 생활을 했지만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대구에서 과일 사업을 하려고 갔는데 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상 중에 귀촌하다시피 했습니다." 교육농장 대표인 미숙 씨와 인터뷰를 하라며 사양하던 용철 씨가 먼저 말을 꺼낸다.

어쩔 수 없는 귀촌이었다고 했다. "70에 가까운 어머니가 혼자 농사짓기엔 너무 규모가 컸습니다. 그냥 두고 볼 순 없었죠. 내가 맡아야 했습니다."

서른두 살. 용철 씨가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했으니 미숙 씨 고민이 깊었을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숙 씨 말문이 터진다.

2001년 귀촌해 지금은 딸기농사를 지으면서 교육농장도 운영하는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이용철(왼쪽)·신미숙 부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때는 귀농귀촌 개념도 없을 때였습니다. 남편의 뜻밖의 계획이 황당했습니다. 한동안 갈피를 못 잡고 '혼자 내려가라', '니가 알아서 해라'라며 싸우기도 했죠. 혼자 고민을 하다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 따라왔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모질었으면 안 왔을 겁니다."

조용히 듣던 용철 씨가 '집사람이 착하다'라고 에둘러 고마움을 표한다. 미숙 씨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뭘 모르니 겁이 없었죠. 시골 실정을 알았더라면 안 왔을 겁니다. 그래도 이곳이 살만하다고 느끼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는 않았죠."

◇농촌 생활 어려움 생활개선회 활동으로 극복 =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에서 생활하다 시댁이라는 낯선 시골에 온 미숙 씨는 사는 게 고역이었다. "애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오면 보이는 것은 흙과 산밖에 없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을 잘 모르지만 그분들은 내가 뉘 집 며느리라는 걸 당연히 알죠. 행동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런 미숙 씨의 마음을 다잡은 것은 '생활개선회'였다. 시누이(용철 씨 누나)가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생활개선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제가 친구도 없는데다 매일 애하고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생활개선회 모임에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시골 정서도 알게 됐죠. 내가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50대가 주축인 시골 마을에서 30대 초반 새댁은 그들에겐 딸 같은 존재였다. 아주머니들은 교육·봉사활동 등에 새댁을 데리고 다녔다. 정신없이 그들을 따라다니던 미숙 씨는 어느 순간, 이 생활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단다.

아내 미숙 씨는 "귀촌 당시 시골 실정을 알았다면 안 왔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오래지 않아 살만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김구연 기자 sajin@

"열심히 따라다니며 일했습니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던지 적중면 생활개선회 임원을 맡게 됐고, 나중에는 합천군 생활개선회 사무국장으로 추천하더군요. 그렇게 사무국장을 맡은 것이 벌써 7년째입니다.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성격도 활달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림자 같던 내 존재가 뚜렷해졌고, 분위기가 점차 내 위주로 움직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됐죠."

◇3000평 딸기농장, 하늘이 농사 반 지어 = 부부는 약 1만㎡(3000평) 비닐하우스 9개 동에서 딸기를 수경재배한다.

"많은 돈을 벌고자 농사짓는 것은 아닙니다. 수익은 제법 됩니다. 2억 원정도. 투자비를 빼도 억대를 넘을 것입니다."

물음에 한동안 웃음으로 얼버무리던 용철 씨가 농사는 하늘이 반 이상을 지어준다며 재미있는 말을 한다.

"경제적으로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채 기반도 잡기 전 5년 사이에 태풍을 세 개나 맞았습니다. 2003년 매미부터 루사 등으로 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았죠. 당시엔 토마토를 재배했는데 막 수확하려는 찰나 태풍이 닥쳐 한 푼도 건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태풍피해 지원(보상)은 시설비 50%만 해줘 농작물 피해보상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는 전부 빚이었죠. 수억 원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최근 몇 년간 태풍이 없어 극복했다. 토마토보다 가격변동폭이 덜한 딸기로 작목을 바꾼 것도 주효했다. 덕분에 작년에야 겨우 빚은 다 갚았지만 또 언제 태풍이 올지 알 수 없어 마음 졸일 수밖에 없단다. '농사는 하늘이 반 이상 짓는다'라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귀농귀촌, 처음부터 분명한 합의 있어야 = "모든 일은 마음먹기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오고 3년이 고비였습니다. 그런데 그 3년을 지내고 5년쯤되니 마음이 바뀌었죠. 어차피 여기에 왔고, 살아가야 하며, 나갈 방법이 없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럴 바에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농사에도 적극적으로 덤벼들었습니다. 공부도 하고 농촌진흥청 사이버 작물교육도 받고…. 나를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때부터 시골과 타협을 했죠. 내가 널 보듬어줄 테니 나를 좀 도와달라고."

옆에서 용철 씨가 미숙 씨에게 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당시 우린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사람이 분위기상 크게 반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죠. 많은 사람이 시골에 와서 적응 못 하는 경우를 봅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사람의 고집으로 귀농귀촌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가족끼리, 부부끼리 반드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현장에서 경험해 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연고지역이 아니면 더더욱 그렇죠. 사람도 사귀고 작물을 배워야 실패가 없습니다." 마주 보는 미숙 씨와 용철 씨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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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일 기자

    • 하청일 기자

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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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2015-11-02 20:30:43    
아름다운 부부네요...
18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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