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살림 도맡은 맏며느리, 시부모 10년 동안 병수발…한결같은 모습으로 효 실천

이지화(67)·이영희(65) 부부는 중매로 한 달 만에 결혼했다. 남편은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고 아내는 어른을 공경하는 참한 여자였다. 부부는 결혼식만 올리고 2년여 동안 떨어져 살았다. 남편은 직장이 있는 울산에, 아내는 시댁이 있는 함양에 살았다. 남편은 아내에게 결혼 전 약속을 했다. "3년 정도 시부모와 함께 살아달라." 아내는 설마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그야말로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에 아내는 독수공방 신세였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한 날은 며느리 손을 잡고 예고도 없이 아들집(울산)으로 쳐들어갔다. "아내가 맏며느리로 시가 풍습을 배우라는 네 뜻은 알겠지만 이제 같이 좀 살아라." 그렇게 부부는 한집에 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맏이로서 책임감이 강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도 컸다. 그런 남편이 미울(?) 수도 있겠지만 아내는 남편 마음을 헤아리고 시부모를 친정부모처럼 생각했다.

부부는 1976년 창원에서 살림을 꾸렸다. 함양에 살던 시부모와 창원에서 함께 생활한 건 1987년부터다. 남편은 공직생활을 했다. 출근은 가장 먼저, 퇴근은 가장 늦게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아내는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매일 세 끼 따뜻한 밥을 지어 시부모에게 대접했다. 명절 때도 맏며느리로서 팔을 걷어붙였다. 명절 동안만 23명이 7끼를 먹는데 아내는 싫을 법도 한 일을 묵묵히 해냈다.

이지화·이영희(왼쪽) 부부가 집앞에서 다정히 서 있다. / 김민지 기자

아내는 시부모가 자주 가는 노인회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밥을 했다. 그런 며느리가 부러웠는지 다들 칭찬이 자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과 집을 10년 동안 오갈 때도 아내는 지극정성이었다. 시어머니도 3년간 뇌졸중을 앓았다.

아내는 아침 7시 30분이면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7시 30분까지 시부모 곁에서 병간호를 했다. 오전, 오후 두 번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렸고 말동무가 되었다. 병원에서도 이런 사람은 드물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수고했어, 고맙네", "사랑해 여보"라는 말은 왜 이렇게 하기 어려운지. 입 안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런 남편이 아내 몰래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년 전국 향교에서 추천해 올라온 명단에서 효자, 효부, 열녀를 뽑는 '오늘의 효열충의상'에 아내를 추천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 효행을 일일이 적어 성균관에 제출했고 얼마 뒤 효부상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아내는 부끄러워하면서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상을 받아서 되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두 부부는 지난 9월 18일 서울에 가서 상을 받았다.

남편은 "이때까지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묵묵히 자기 일을 해준 아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나마 해주는 게 내가 고마움을 전달하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내가 잘해드린 만큼 시부모도 나에게 잘해줬다. 매년 내 생일마다 시장에서 미역과 소고기를 사오셨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셨다. 빠뜨린 적이 없으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일을 다 했는지 모르겠지만(웃음), 힘들 때마다 우리 집 며느리가 최고다며 손을 치켜주셨다. 고맙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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