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김봉건 남해군 심천마을 이장

"이것 좀 먼저 봅시다."

김봉건(66) 이장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대뜸 노란 서류봉투 몇 장을 건넸다.

서류봉투 겉면에는 예전에 했거나 앞으로 해야 할 마을 대소사와 그에 따른 비용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부탁한 사소한 일들도 눈에 띄었다.

"나이가 드니까 잘 까먹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을 일이나 주민들이 부탁한 일들을 이렇게 꼼꼼하게 메모합니다. 아침에 마을회관으로 출근하면 그날 할 일을 잘 정리해서 메모하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입니다."

남해군 지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 중의 하나인 남해읍 심천리 심천마을의 김봉건 이장은 주민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마을 공동 일은 물론 주민들이 부탁하는 소소한 일까지 잊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데다 상냥한 성격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봉건 이장은 항상 낮은 자세로 솔선수범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마을 이장을 맡은 지 2년이 채 안 됐으나 그의 성격 때문인지 오랫동안 마을 이장을 맡은 것 같은 연륜이 느껴졌다.

그는 2006년 남해군청에서 퇴직한 세무직 공무원 출신이다. 퇴직 이후 고향인 이곳 마을에서 묵묵하게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촌부로 살았던 그는 주민들 권유로 마을 감사에 이어 어촌계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장까지 떠맡게 됐다.

"세무직 공무원 출신이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감사를 맡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해서 하게 됐습니다. 감사 맡으면서 마을 공동 기금을 봤는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문제가 없게끔 장부 정리나 공금 사용을 투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촌계장을 맡았을 때 많을 적에는 새꼬막이나 바지락을 양식하는 마을 공동 어장에서 한 해 8억 원 수익을 올려서 마을 주민들이 몇백만 원씩 나눴습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사실 하기 싫었는데 많은 주민이 이장도 해보라고 자꾸 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 노인이라서 때론 간부공무원(계장) 출신으로서 거드름을 피울 수도 있겠으나 그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마을 이장은 단지 봉사하는 자리라며 항상 주민 눈에 맞춰 낮은 자세로 솔선수범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을 회관 앞에 보이는 '라보' 차량 보이시죠. 저거 마을 주민을 위해서 제 돈 들여 샀습니다. 마을까지 공용버스가 들어오지 않다 보니 고령 주민들이 불편한 게 한두 가지 아닙니다. 할매들이 농약을 사러 가거나 콩 수매를 하려면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읍까지 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비싼 택시를 탑니다. 그래서 작은 차를 샀습니다. 마을 공동 일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장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된 농사일을 마치면 늘 있었던 주민들의 술자리 문화도 많이 줄었다. 그는 주민들의 건강 못지않게 빈번한 술자리가 마을에 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가나 노래 연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민들이 술 대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그의 임기는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주민들 숙원 사업인 마을 게이트볼장 건립과 공용버스 진입을 위한 마을 도로 확·포장 사업을 해결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적당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서 우리 마을 정도 규모라면 거의 다 있는 게이트볼장을 못 만들고 있습니다. 주민들 건강이나 여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설입니다. 마을 안으로 공용버스가 못 들어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도로가 좁아서 공용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군이나 군의회에 찾아가서 도움을 달라고 해 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이장을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꼭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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