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3편

공항에 홀로 남은 아줌마

6월 19일. 드디어 로마에서 파리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공항에 가서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으려니 파리행 표가 취소되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로마공항에 불이 나서 그렇다네요. 우리가 여행 중이라서 미처 확인을 못해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지요. 아직 남편이 있었고 딸과 통화도 하고 하다 겨우 파리행 비행기표를 하나 샀습니다. 원래는 내가 먼저 파리로 출발하고 나중에 남편은 뮌헨을 거쳐서 인천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나 혼자 로마공항에 남게 된 거예요. 5시간 정도나요∼.

각오는 하고 왔었지만 낯선 나라의 공항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정말 울고 싶었어요. 아니 울었어요. 남편이 가고 나서는 혼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어요. 홀로 남음, 남편과 헤어짐, 카미노를 혼자 걸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담감이 함께 나에게 덤벼들었던 거지요. 그런데 울다 생각해 보니 이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데 울고불고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일인데 그리고 어렵게 결정하고 온 건데 씩씩하게 맞서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일도 없이 몇 시간을 공항에 있으려니 너무나 지루했어요. 게다가 배터리를 챙기지 않고 배낭을 부치는 바람에 휴대전화도 쓰지 못해 더더욱 지루하더라고요.

프랑스 생장으로 향하는 길.

파리서 만난 든든한 동행자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 파리에서는 미국에서 온 언니를 만나기로 했어요. 미국 교포인 이 언니는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됐는데, 마침 서로 일행을 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답니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도착하게 돼서 메시지를 계속 보냈는데 왜 그런지 글도 보지 않았고 답장이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언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도 되었고요. 드디어 파리 드골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았고 언니랑 만나기로 한 호텔이 공항 안에 있다고 해서 눈을 크게 뜨고 밖을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호텔을 찾아가 이름을 말하니 다행히 그 언니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더라고요. 방을 찾아가니 짐은 풀어놨는데 언니는 보이지 않는 거예요. 짐을 놔두고 찾아 나섰죠.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사진에서 보았던 언니가 거기에 서 있는 거예요. 제가 제시간에 안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랑 길이 엇갈린 거였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둘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인사했네요. 언니는 성격도 활달하고 씩씩한데다 미국에 사는 분이니 영어도 잘해서 난 한결 마음이 놓였어요. 일단 식당에 가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니 온종일 다물었던 입에서 수다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챙겼는지, 내일 어떻게 갈 것인지, 아이들 얘기며 언니 손자 얘기 등등을 하다가 잠이 들었나 봐요. 나는 원래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는데 이날은 웬일로 푹 잠을 잤어요. 하긴 로마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설쳐댔으니 피곤도 했나 보죠.

프랑스 남부 비아리츠 공항 앞에서.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들

6월 20일. 오전 6시 7분에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도시 비아리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4시 40분에 기상을 해서 준비를 하다 보니 늦을 것 같았어요. 식당에서 대강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짐을 부치려는데 웬걸, 40유로나 달라는 거예요. 어제 다른 항공비행기는 아무 문제 없이 배낭을 부치고 비행기를 탔는데 왜? 뭔지는 모르지만 역시 저가 항공은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그냥 들고 기내에 타려는데 보안에서 걸리고 말았어요. ㅜㅜ 시간도 별로 없는데 배낭의 짐을 다 꺼내라네요. 주섬주섬 다 꺼내니 별로 크지도 않고 작은 병에 옮겨온 샴푸, 폼 클렌징, 얼굴에 바르는 크림, 과도, 그리고 친구가 만들어준 고추장은 뺏기고 말았죠. 짜증은 났지만 비행기 타는 것은 늦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비아리츠는 작은 공항이더군요. 내려서 기념 샷 한 장 찍고 바욘행 버스를 타러 나왔어요. 대부분 순례자가 기차로 이동을 하다 보니 아직은 순례자가 많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물어서 버스를 탔는데 잘못 탔나봐요. 뭐라 뭐라 하면서 내리라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찾는 곳이 아니었어요. 내린 김에 주변에 슈퍼가 있는지 물어보니 가르쳐 주더라고요. 물론 보디랭귀지였죠. 뺏긴 샴푸와 얼굴에 바르는 크림, 점심으로 먹을 과일, 빵, 오이 등을 샀습니다. 길을 물어물어 버스 타는 곳을 찾아가는데 다행히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승강장이 있었어요.

바욘 시가지.

운전 기사님이 터미널이 아닌 엉뚱한 장소에다 내려 주는 바람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바욘을 잠시 누벼 봤답니다. 모든 유럽이 그러하듯 이곳도 유서 깊은 곳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큰 성당 앞에는 관광객들도 보이는 것 보니 여기도 사람들이 찾는 곳 같았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큰 강엔 어디서부터 흘러 왔는지 많은 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더라고요. 터미널 앞 성당에 가서 잠시 기도 드리고 버스표를 끊어 놓고 생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간식을 먹었답니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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