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색소폰 무료공연하는 김종두 씨

자동차, 사람, 상가가 시끌벅적하게 뒤엉킨 창원 상남동 분수대 광장. 모든 소음을 뚫고 깊고 큰 울림이 일대를 장악한다. 색소폰 소리다. 가볍게 입을 푼 연주자가 짤막한 소개와 함께 신나는 트로트를 연주한다. 옆에는 지역가수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 건물 따라 흐르는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불빛이 마치 리듬에 맞춰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무심코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을 찍는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자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어르신 한 분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어느덧 노래가 끝나고 곳곳에서 앙코르 요청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격주 금요일 창원 상남동 분수대 광장에서, 매주 일요일 안민고개에서 색소폰 무료공연을 하고 있어요. 재즈, 팝송, 대중가요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소리 듣기 좋지 않습니까."

2시간 가까운 공연을 마치고 막 무대에서 내려온 김종두(60·창원시 사파동) 씨.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에는 40년 전 색소폰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감흥이 아직 살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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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음악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김종두 씨.

1970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종두 씨. 우연히 동네에서 이웃 형이 치던 맑고 청아한 기타 소리에 반한다. 6개월 동안 용돈, 책값 1000원을 모아 집에서 악기 상점이 있는 오동동까지 1시간 30분을 걸어 기타 한 대를 구입한다. 부모님한테 들킬까 창고에 숨겨 놓고 몰래 연습하길 3개월 되던 어느 날 기타를 메고 나갔다가 딱 걸린 종두 씨.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던 아버지는 종두 씨 눈앞에서 기타를 부러뜨리고 만다. 15살 까까머리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상심도 잠깐. 종두 씨는 6개월 뒤 또 기타를 구입해 이번에는 아는 형네 집에 맡기고 연습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못가고 아버지한테 들켜 아니나 다를까 기타는 두 동강이 난다. 종두 씨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 얼마 안 돼 취업한 종두 씨. 오로지 기타를 마음껏 칠 생각으로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얻는다.

"하루는 퇴근하고 자취방에 들어서는데 옆방에서 생소한 악기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뭐지 싶었죠. 옆방으로 달려갔더니 직장 동료가 색소폰을 불고 있는 거예요. 기타와 달리 깊고 풍부한 소리가 매력적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악기가 있나 싶었죠. 바로 기타를 500원에 팔아치우고 색소폰을 샀죠. 하하."

그날 이후 색소폰에 푹 빠진 종두 씨. 울림이 큰 색소폰 소리가 행여 이웃에 폐가 될까 옷장 안에 들어가 불거나 인적 드문 곳을 찾아 연습했다. 틈틈이 실력을 갈고 닦은 종두 씨는 2003년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지인한테 임대한 색소폰연주카페를 연다. 기타나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라이브 공연에 익숙한 손님들은 흔치 않았던 색소폰 공연에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워하는 모습에 혹시나 색소폰을 들고 경로당을 찾은 종두 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신명난 음악에 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했고, 구슬픈 가락에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음악의 힘을 실감한 종두 씨는 그 후 요양원, 복지관, 병원은 물론 각종 지자체 축제, 행사에서 무료공연을 계속 해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수월한 거리공연을 위해 2.5t 윙보디 트럭을 사들여 스피커 등 음향시설을 설치했다. 2년 전에는 개인 연습실, 음악실 등을 갖춘 창원한울림색소폰 동호회를 설립했다. 색소폰 수강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 전기료 등 관리비와 장비 수리, 트럭 유지비로 한 달 15만 원을 받는다.

10여 명의 수강생 중에는 고등학생 때 음악선생님이 색소폰으로 대니 보이 음악을 연주하던 모습을 잊지 못해 찾아온 트럭 기사가, 진주에서 창원까지 토요일마다 방문하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있다. 아직 서툴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함께 무료공연을 펼칠 잠재된 재능기부자다.

정기공연을 오래하다 보니 자연스레 팬도 생겼다. 일정이 겹치거나 사정이 생겨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온다.

"힘들어도 다시 무대에 서는 원동력입니다. 장시간 서서 색소폰을 불어도 힘들지 않은 이유기도 하고요."

자신의 음악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는 종두 씨. 무료공연을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음악은 삶이고 생활이다. 오늘도 연습실에서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종두 씨 색소폰 소리가 선선한 가을밤 낭만을 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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