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통영 신봉마을 김봉열 이장

"1㎞이면 1000m지요? 그러면 20㎞는 되겠네."

신봉마을에서 김봉열(66) 이장은 '길봉열'로 불릴 만하다. 그는 통영시 산양읍 신봉리 신봉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데, 이장 재임 15년간 길이 없는 신봉 논밭에 많고 많은 길을 낸 주인공이다.

1990년대 신봉마을은 700명 정도가 사는 산양읍 최고의 마을이었다. 지금은 370명 정도가 산다.

대부분 그런 것처럼 산양읍 신봉마을에서도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남은 이들은 나이를 먹었고, 나이 때문에 농사짓고 살기 어려울 농촌이 돼 버렸다.

3년이 임기인 이장을 두 번인가 세 번째인가 할 때인 1990년대 후반 그는 "그때 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했다. "지게나 지고 다니는 길을 경운기라도 다니게 하자"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다행히 주민들이 따라줬다. 하지만 땅주인들은 종종 거절하곤 했다. 보리가 팰 때면 보리 값을 보상해주면서 길을 냈고 나락이 익을 때면 나락 값을 보상했다. 자기 땅으로 길을 내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싫다는 땅 소유주들이 있었다. 이들과 소주도 마시고 살살 달래면서 길을 냈는데, 10년 20년이 지나자 지금은 이들이 오히려 더 크게 고마워한다.

통영 산양읍 신봉마을 김봉열 이장. /허동정 기자

"지금 신봉마을 산과 들에 하얗게 보이는 콘크리트 농로나 산길 대부분은 내가 초기 이장 시절 만든 거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로 말미암아 신봉마을 산길과 들길은 뻥뻥 뚫렸다. 생각과는 다르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흙길을 관에서 포장해 줬고 길 없던 땅으로 길이 생겼으니 자연적으로 땅값이 올랐다.

5년 전 그는 멧돼지에게 공격당해 생명이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다.

"멧돼지를 조심하라"라는 경고 방송까지 하고 난 아침이었다.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동네 산마루 현장에 갔을 때였다. 잠깐 사이 덫에 걸린 멧돼지가 탈출해 도망가는 그를 순식간에 덮쳤다. 거구의 멧돼지는 처음 그의 허리를 물어뜯었고 밀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 덤빈 멧돼지는 그를 밑에 깔아뭉개고 덤볐다. 그는 돼지의 머리를 밀고 발로 차면서 필사적으로 대결해야 했다. 팔과 다리 엉덩이 등 온몸이 물려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 됐다. 신고했던 119가 도착하고 함께 있던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지만 그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뼈가 아닌 근육을 다쳐 병원에서 1개월 정도 치료하고 퇴원했지만 온몸의 살이 떨어지고 찢어졌다. 지금도 손가락과 엉덩이 각 부위가 완전하지는 않다. 나를 공격한 멧돼지는 잡지 못한 것으로 안다."

"지금 마을에서 제일 큰 문제는 고령화로 휴경지가 느는 것과 그나마 농사를 짓는 땅에는 멧돼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늘엔 까치와 같은 조류가, 땅 위에는 멧돼지가 설치니 농사짓기가 많이 어렵다."

그는 겨우 '20만 원쯤'인 이장 수당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이장 수당은 이전에는 8만 원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이장 출신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 현재 22만 원으로 올린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농회장이라고 농협에서 10만 원 정도 받는 것 외에 일은 많고 수입은 적어 답답하고 갑갑하다.

"올해 최저임금이 5580원이고, 내년이 6030원인데 이장은 준공무원이지만 최저임금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부업을 하는 이장이야 괜찮지만 정부는 마땅한 벌이가 없는 이장들에 대해서는 용돈이 아니라 활동비 정도의 수당을 줘야 한다."

신봉마을은 2012년 초등학생을 목 졸라 살해한 김점득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마을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신봉에 사는 게 부끄러웠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그때는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다."

그는 배고팠던 시절인 17세부터 거의 30년간 멸치배 등 여러 배를 타면서 선원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1980년 후반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30년 정도를 땅 위에서 생활했다. 영농후계자가 됐고 이어 주민 추대로 이장이 됐고 연임을 하다가 몇 년을 쉰 다음 다시 이장 일을 하고 있다.

"전기가 겁나더라. 수년 전 마을회관을 지을 때 주민들이 직접 나와 일손을 도왔다. 지을 때 지금도 살아계신 주민 한 분이 철근을 들다가 고압선을 건드렸다. 손으로 들어간 전기가 발가락을 통해 나갔는데 신발이 터져버릴 정도였다. 그때 동네에 돈은 없었고 내가 책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다친 분은 3~4개월을 병원에 있었는데 나는 당시 건강보험공단과 한전에 찾아다니며 치료비를 구하려 했다. 그때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다친 그분께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알릴 일이 있을 때 그는 어김없이 오전 7시 이후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으며 동네 방송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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