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들어선 것은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이주민들을 인솔해 여름 캠프를 간 곳이 마침 친정 근처였다. 종일 활동은 같이 하되 잠은 친정에서 자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번 보았던 어머니의 등이 너무 작고 쓸쓸해 보였던 탓이었다. 밤에 가겠다는 말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기다리던 어머니는 인기척에 퍼뜩 잠을 깨셨다.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에 찾아간 중년의 딸이 배고플까봐 일어나 앉으신 어머니 모습에 먹먹하고 애틋하였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 먹이고 입히며 키운 것이 엄마의 인생 거의 전부이셨다. 혹시 배고플라, 제때 밥 못 먹일라 가슴 졸인 엄마 인생에서 밥은 하늘처럼 귀한 것이었다.

부산스레 샤워를 끝내고 어머니의 곁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이렇게 단둘이 어머니와 누워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멀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엄마를 졸라 언니가 학교 다니는 마산으로 전학을 간 당돌했던 딸은 바쁘게 평생을 종종거리며 살았다. 나는 나의 바쁨에 허덕이며 등 뒤에서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지켜보고 계시던 엄마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본다. 나는 독서 수업 시간에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넉넉하고 푸짐한 음식으로 동물들 다 챙기고 나누는 손 큰 할머니가 꼭 우리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손으로 우리를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많은 짐승과 꽃들도 길러내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 야위어 바스라질 것 같다. 투실하던 두께의 세월이 다 사라져가고 이제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가죽만 남은 손보다 더 얄팍하다.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도대체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나 싶어 가시가 박힌 손가락처럼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두 아이를 바라볼 때 내 마음 속의 뜨거운 무엇이 아이들을 향해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제 새끼를 향한 어미의 본능적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나도 우리 어머니께 그런 귀한 자식이었음을, 그렇게 사랑 받는 존재라는 자각을 몸과 마음이 마른 논에 들어오는 물처럼 울컥울컥 받아들였다.

첫아이를 낳던 순간 나의 생명이 아이를 통해 함께 존재하고 숨 쉬리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어머니도 나, 우리 여섯 남매를 통해 그러하셨으리라. 생명도, 본능의 사랑도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윤은주.jpg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하지 못한다면, 따뜻한 온기를 기억할 만큼 자주 안아주지 못한다면 어머니의 남은 시간이 끝난 뒤 닥쳐올 후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작아진 어머니는 나의 한품에 쏙 들어왔다. 그렇게 안고 나직이 말해본다. "엄마, 울 엄마 사랑해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