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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는 없다 차는 숭늉 마시듯 즐겼다

2015 경남이야기탐방대(3) 하동에서 알아보는 전통차 진실과 거짓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하동이 차 재배 적격인 까닭 = 2015 경남 스토리랩 이야기탐방대 두 번째 나들이는 하동으로 향했다. 하동은 섬진강과 지리산으로 이름이 높다. 지리산과 섬진강 덕분에 차나무가 자라기에 적격이라는 말도 듣는다. 하동 북쪽에 있으며 동쪽과 서쪽으로 산자락을 펼쳐 감싸는 바람에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리산이고, 평평한 지대를 이루며 따뜻하게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지형을 마련해주는 섬진강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러해서 하동은 화개면과 악양면 일대에 차밭이 많다. 지리산 골짜기는 화개면에서는 화개천을 따라, 악양면에서는 악양천을 따라 남쪽으로 열려 있다. 섬진강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흐르며 북쪽 지리산 자락으로부터 화개천·악양천을 쓸어담는다.

◇쌍계사 들머리 '차 시배지' = 화개장터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일행은 쌍계사 쪽으로 거슬러올랐다. 쌍계사 들머리에 '차 시배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차 시배지에 들어서면 빗돌을 셋 만나게 된다. 여기를 차 시배지로 정하고 1980년대 이후 세운 것들이다. 우리나라 차를 심은 최초 기록은 알려져 있는 대로 <삼국사기>에 있다.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8) 기사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갖고 오자 임금이 이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이미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성행하게 됐다."

차꽃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피어난다.

안내문을 보면 1981년 한국차인연합회가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선포하면서 '차 시배 추원비(茶 始培 追遠碑)'를 세웠고 이태 뒤(1983)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여태 알려지기로는 한국차인연합회가 전남·북과 경남의 지리산 자락 여러 곳을 조사하면서 여러 요인을 따져본 결과 여기를 차 시배지로 꼽았다.

시배지 비탈진 산기슭에는 원래부터 있던 이런저런 바위들과 더불어 차나무로 빼곡하게 덮여 있다. 뒤로는 숲을 이룬 대나무가 바람에 따라 쓸리면서 연출하는 소리와 모습이 그럴듯하다. 해가 구름을 벗어나 볕을 내리쬐자 차밭은 갑자기 온통 환하게 빛이 난다. 그렇게 빛나는 찻잎 사이로 꽃들이 보인다. 노란 꽃술에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벌써 져서 씨앗을 매단 가지도 보인다. 차꽃은 찬 기운을 맞으며 가을에 피고, 찻잎은 찬 기운을 보내며 봄에 솟는다.

◇차와 관련된 진실과 거짓 = 다음으로는 악양면 매암다원을 찾았다. 매암다원 주인 강동오 씨는 매암차박물관 관장이기도 하다. 박물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임업 관련 지배수탈기구 관사로 썼던 적산가옥이다. 그이는 3대째 차밭을 가꾸면서 하동 악양 지역에 남아 있는 전통차의 모습을 복원하는 한편으로 차와 관련된 문화도 모으고 관련 역사 기록도 챙겨왔다. 일제강점기 농막으로 쓰던 건물을 뼈대를 살린 채 재활용한 다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쌍계사 아래에 차 시배지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기록이 없다. <삼국사기>는 '지리산'이라고만 했지 하동이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동이 시배지로 지정된 까닭은 정치적인 데 있지 싶다. 박정희 전두환 등 경상도 출신이 대대로 집권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차인 세계에서도 영남 출신이 세력을 얻으면서 그렇게 가져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얘기는 그치지 않았다. "김해 장군차도 족보는 없다. 이능화(1869∼1943)가 <조선불교통사>를 1918년 펴내면서 '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서 가져온 차씨라 전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전 기록에는 김해 차나무 얘기가 없다. 게다가 차나무는 단일종이다. 따뜻하면 잎과 줄기가 크게 자라고 추운 지대에서는 그것이 작아질 따름이다. 그 밖에 산청·함양·하동 기록이 있는데, 기록이 꾸준히 이어지는 지역은 산청·하동 두 곳이다."

매암다원. 야생차밭이지만 동그랗게 다듬질을 했다. 경관을 좋게 할 목적으로 돈 들여 한다고 한다.

설·추석 차례가 차와 관련돼 있다는 얘기도 했다. "제사상에 차를 올리는 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만큼 차를 가까이했다. 차례를 옛날에는 초하루와 보름날에도 지냈다. 차례에 차를 올리지 않게 된 것은 조선 시대 예학(禮學)을 집대성한 퇴계 이황이 '조상 섬기는 마음이 더 소중하니까, 차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은 대신 술을 바쳐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통차의 운명 = 강 관장에 따르면 나라마다 차를 다루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차는 나라마다 뜻하는 바가 다르다. 중국에서 차는 산업이었고 그래서 재산으로 중시했다. 일본에서는 신분이었다. 영주가 새로 사무라이가 되는 사람에게 그 증표로 내리는 물건이 찻그릇과 차였다. 일반 백성들은 마실 수 없었다. 걸맞은 격식이 생겨났고 그것이 지금도 중시되는 데가 일본인 까닭이다. 조선에서는 차가 소통이었다. 얘기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마실거리였다. 차주전자에 달여 숭늉 마시듯이 했다. 스님도 양반도 일반 백성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차 예절은 모두 일본이 뿌리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라 짐작하지만 차다. 중국·인도의 엄청난 인구와 일본이 마신다. 다음이 커피고 3등이 카카오다.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세계 음료 시장이 짜였다. 우리나라 차는 설 땅을 잃었다. 명맥 유지조차 어렵다. 그 명맥 유지를 위해서라도 평생을 바칠 생각이다."

차 시배지를 둘러보는 이야기탐방대.

◇카페는 몰리고 찻집은 텅 비는 까닭 = 한때 전통차가 인기를 끈 적도 있다. 그러다가 농약·동해(凍害) 파동 등을 겪으면서 시나브로 꺾였다. 커피는 당초부터 크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고 전통차가 꺾인 틈까지 치고 들어왔다. 이제는 한층 더 기세가 등등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말았다. 커피를 파는 카페는 이제 어지간한 동네라면 곳곳에 구석구석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게 된 까닭이 커피에만 있을까?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커피가 주는 맛과 향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어쩌면 커피의 맛과 향을 깊이있게 느끼는 이는 소수 마니아일 뿐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그보다 다른 이유로 드나드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지난 10∼20년 동안 사람 만나는 문화가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어지간하면 집으로 초청해서 술이든 차든 커피든 마셨지만 지금은 가까운 일가친척이 아니고는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없어졌다. 술집이든 찻집이든 카페든 바깥에서 만난다. 게다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면 낭비적으로 봤지만 이제는 '할 일 없는 수다' 자체가 갖는 정신·육체적 긍정 효과에 주목하는 덕분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다. 또 카페는 10대 20대 학생들 사이에 인터넷도 공부도 할 수 있는 도서관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사람들은 왜 커피 한 잔에 5000원 안팎을 기꺼이 지불할까? 커피값만 아니라 자리값도 포함돼 있다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통찻집도 불가능할 까닭은 없다. 전통차는 '리필'까지 절로 된다. 그런데도 되지 않는 까닭은 전통차에 으레 따라붙는 복잡한 격식이나 마시기 까다롭다는 편견 때문은 아닐까? 전통차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그것일 수 있겠다. 그런 격식이 우리것이 아니고 일본 것이라면 걷어내는 작업은 좀더 손쉬워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암차박물관. 192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

이야기 탐방대가 경남 각지를 둘러보고 쓴 이야기들은 경남도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 화면 오른쪽 위에서 세 번째 배너 '2015 경남 스토리랩 이야기탐방대'를 찾아가면 볼 수 있다.

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진행: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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