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에서는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라 이름 붙였다. 두 가지 점에서 그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 2002년에 이루어질 월드컵대회라는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문화를 앞세운 점검과 대응안의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이다.

둘째, 여러 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지역의 행정적·제도적 자치가 마침내 문화자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반성, 발상 심화로 말미암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어느 경우든 ‘지역문화의 해’에 이르러 무엇보다 앞서야 될 일은 지역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가다듬는 일이다.

지역이란 오랫동안 획일화된 여러 부문의 중앙 집중으로부터 구조화되고 다져진 우리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해가기 위한 새로운 문제틀이다. 말하자면 지역은 되찾아야할 복고적 가치가 아니라, 새롭게 인식하고 세워나가야 할 형성 가치인 셈이다.

‘지역문화의 해’가 지역 시민사회의 문화능력과 문화수행력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네 가지 당부의 말로 드러내고자 한다.

첫째, 지역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장기계획이 지금부터라도 수립되고 검토되기를 바란다. 국가는 국가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지난 시기의 민속문화 재현이나 문화유적 복원과 같이 단선적 문화정책의 시행이 거듭된 큰 줄기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사나 세계사적 보편성 위에서 지역의 위상 파악이나 지역성을 자각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기 힘들었다. 지역사에 대한 심대한 왜곡이 의심없이 저질러지는 것도 그 까닭이다. 밀양시에서 이미 착수한 바 1급 부왜작곡가 박시춘 생가 복원사업과 같은 것이 좋은 본보기다.

둘째, 대규모 토목사업을 앞세워 이루어지는 지역의 문화시설 건립 관행에 대한 반성이 심각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지역자치가 시행된 뒤부터, 해당 지역의 자연·역사·생활 경관에 관계없이 돌출되고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문화시설은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성하고 있다. 아마 우리의 뒷세대들은 그것을 걷어내는 데에만도 다시 숱한 재정 낭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시기 문화행정에서 반성해야 할 주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지역의 토착 토건자본과 결탁한 물량주의적 문화시설의 확충이었던 셈이다.

셋째, ‘지역문화의 해’에는 실질적인 지역문화 향유의 제도적인 바탕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지역의 각급 교육 현장에서 이름뿐인 지역문화에 대한 학습과 향유의 장이 학제적인 차원에서 보다 실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문화 학습을 위한 교재의 개발에 지역 학계가 발 벗고 나설 일은 그 처음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의 역사경관 탐방 수준에서 더 나아가 예술·문화·생활·생태에 걸치는 모든 분야에 실질적인 지역 학습과 문제 인식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올해부터 소규모의 향토관이나 문헌관과 같은 지역문화 공공재의 바탕이 다져졌으면 한다. 머지 않은 시기에 도나 시 단위가 아니라, 군 단위와 같은 소지역에서 그에 대한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지역의 생활 문화, 자연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변화를 보여주는, 지나간 시기의 다양한 문헌·영상 사료를 찾아내고 간추릴 뿐 아니라, 오늘을 체계적으로 갈무리하여 뒷날에 이어주기 위한 장의 필요성이 그것이다. 기존의 몸집만 커다란 광역 단위의 박물관이 수용하지 못하는 개성적인 문화공간은 하루아침에 마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문화의 해’인 올해는 그 논의의 깊고 옅음에 관계없이 지역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지역문화 담론과 그 실천이 지나간 시기의 관행과 인습의 고리를 어떻게 끊고, 지역의 문화자치에 이바지할 것인가 하는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문화상품의 개발, 소비적인 전시행사, 피상적인 관언유착의 호들갑으로 건너가 버리는 ‘지역문화의 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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