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미술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김미정 씨

지난 8월 2일부터 29일까지 창원 성산도서관에서는 특별하면서도 재미있는 전시회 하나가 열렸다. 아이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만든 동화책과 그 낱장의 작품을 떼어 진행한 전시였다. 동화 제목은 <달빛 섬의 전설>. 창원시 성산구 동산초등학교 후문 앞 미술교육 기관인 '그림마당' 친구들 30명이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이다.

김동주(동산초 6) 학생이 쓴 동화를 30장면으로 나눈 뒤 이 내용을 5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 장면 묘사를 통해 그림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보통 동화책은 어른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잖아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아이들이 그린 세계가 아니죠. 아이들 눈으로 바라보는 동화 세계를 직접 그려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이끈 그림마당 김미정(33) 선생님은 동화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아이들이 대견한 듯 미소를 지었다.

창원 성산구 상남동 미술학원 '그림마당'의 김미정 씨가 동화책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김두천 기자

동화는 조그마한 섬에 함께 사는 두 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래부족은 낮에는 사람이었다가 밤에는 고래로 변해 물에서 사는 신비로운 부족인데 그 사실을 모르던 달빛부족이 이를 알게 된 후 고래부족을 섬에서 쫓아낸다는 내용이다. 자연을 훼손하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못된 인간들 행태를 꼬집는 내용으로 보였다.

"마냥 순수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들이 속으로는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보면 저도 많은 걸 배우게 되죠."

미정 씨는 그림마당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마냥 아이들이 좋아서 마련한 공간이다.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우연히 지인 소개로 초등학교에서 일하게 됐어요.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들만 대하다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니 제 마음도 편하고 아이들 마음도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때, 아이들이 편하게 그림을 배우고 마음도 치유할 수 있는 학원을 만들자 생각했죠."

아이들 30명이 함께 작업한 동화 〈달빛 섬의 전설〉.

그림마당은 이젤과 석고상이 무게 잡는 여느 미술학원과 다르다. 아늑한 화실 분위기에 아이들이 두런두런 앉아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요즘은 초등학생이 더 바빠요. 어려서부터 국·영·수 종합 학원에 단과 학원, 미술 학원, 체육관까지 두세 개는 기본이더라고요. 부모님과 학교, 아이들 관계에서 얻은 스트레스도 매우 높아요. 저는 그림마당에 올 때만큼은 그런 걱정 놓아두고 그림 그리며 마음껏 놀고 힐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애초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을 전후해 서울 인사동, 성산아트홀에서 전시회도 했던 미정 씨. 얼마 전에도 가까운 카페에서 개인전도 열었지만 교육과 경쟁에 지친 아이들을 보듬는 게 더욱 보람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번 동화프로젝트도 그런 마음에서였어요. 아이들이 입시 교육에 메마른 감정을 미술을 이용한 다양한 경험으로 생기있게 만들고자 함이었죠."

미정 씨는 아이들 마음을 좀 더 헤아려보려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동미술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는 게 그것이다. "학원으로 들어오는 얼굴만 봐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강 알 수 있어요. 화가 났는지 짜증 나는 일이 있었는지…. 대화를 나눠보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내 아이를 가장 잘 안다고 하는 부모님들도 막상 대화를 해보면 아이 고민을 잘 모르시는 일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미술을 매개로 아이들과 깊이 소통하는 그런 기댈 언덕이 되어보고자 공부하고 있죠."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고 또 그린 그림을 보며 미정 씨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앞서 말한 아이들의 생각도 기특하지만 제 그림에 영감을 많이 주기도 해요. 특히 아이들만의 독창적 시각에서 나오는 선과 구도는 한 번쯤 차용해 써 봄 직한 것들이 많아요. 이럴 때면 저와 아이들 모두 서로서로 힐링해 주는 사이라 느끼게 되죠."

'타샤의 정원'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 겸 삽화가 타샤 튜더(Tasha Tudor·1915~2008)를 좋아한다는 미정 씨. 요즘 타샤처럼 예쁜 꽃을 그리는 데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할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도 한창이란다. 90세가 넘어서도 꽃과 자연 그리고 아이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 타샤. 미정 씨가 타샤의 길을 오롯이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