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 그래 가자! 마음먹고도 불쑥불쑥 두려움이 솟고

지난 글에서는 함안 시골에 사는 박미희 씨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우연히 알게 되고 계속 동경해 온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입사 30주년 휴가를 얻은 김에 유럽 여행을 간 거지요. 박 씨는 이왕 유럽까지 간 김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자고 마음먹게 됩니다. /편집자 주

◇유럽 가족여행, 바로 이때다 = 가족 유럽 여행이 작년(2014년)부터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 회사에서 입사 30주년이라고 휴가를 줘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거예요. 작은 딸아이가 독일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우리 부부는 딸도 만날 겸해서 함께 렌터카를 빌려 2주 일정으로 유럽 여기저기를 둘러볼 예정이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요. 그래요, 이번 여행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더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도 들뜬 김에, 유럽까지 간 김에 카미노를 걷고 오자고 마음먹고 이제 갈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40일 집을 비운다고 남편의 병이 더 악화하는 것도 아니고, 무릎 아픈 것이 앞으로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고, 맡은 이장 일은 지장이 없도록 동네 분에게 부탁해 보고, 돈은 아직 젊으니 갔다 와서 어떻게 해 보기로 하고, 평생 공부한다 해도 영어가 능통해지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 지금이 나의 남은 일생 중 가장 젊은 나이 아닌가! 난 단지 가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였어요. 이렇게 마음먹으니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거기에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당신 없을 때 나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하는 남편과 '엄마도 할 수 있어, 그리고 엄마 대신 아빠 자주 찾을 게' 하는 딸의 응원이 또한 저를 그 길에 서게 했지요.

이탈리아 나폴리 누오보성에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둑길을 매일 걷고, 먼저 갔다 온 딸의 조언을 들어가며 카미노에서 이용할 번역, 지도 등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깔고, 준비물도 챙기고, 남편이 혼자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장만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담아놓고, 동네 일은 믿을 만한 분을 찾아가 부탁해놓고, 책도 다시 읽어 마음에 담았고, 또 기도도 많이 했어요. 남편은 걸으면서 들을만한 좋은 음악을 찾아 휴대전화에 담아 주었지요. 여행 중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눠 줄 태극기 배지도 40개 주문하고 시장에서 천을 떠다가 순례 후 동네 구경할 때 입을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한복 원피스도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카미노 길을 걷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분이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결정했다고 볼 때마다 힘을 주시는 분들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고 더욱 잘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걱정 또 걱정 = 사실은 결정을 하고도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망설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설마 죽기야 할까, 그리고 죽는다 한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그것도 괜찮지' 하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각오가 비장했던지 친구 셋이 하는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데, 내가 혹시 못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총무 수첩까지 친구에게 주고 갔답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서 남편과 함께.

물론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어요. 안내서에 보면 날씨는 덥다지, 등의 짐은 무겁다지, 숙소는 열악하다지, 관절은 아프고, 물집도 잡히고, 의사소통도 어렵고… 등등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 것 같긴 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걱정이 되어 다음 기회에 다른 이와 함께 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어쩐지 이 길만큼은 혼자 걷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 왔어요. 함께 가려고 했다면 일행을 찾을 수도 있었고, 딸이 걸을 때 같이 걸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소에 두 딸이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는 것을 보고 늘 입버릇처럼 '참 부럽다'라고만 했는데, 나도 그런 걸 꼭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길을 걸으면서 그게 참 무모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가끔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게 또한 얼마나 잘한 일인지도 알겠더라고요.

가기로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또다시 큰 걱정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막상 순례길에서는 어떻게 걸을 것 같은데, 출발지인 생장 피에드 포르(Saint-Jena-Pied-Por :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도시 - 편집자 주)까지 찾아가는 것이 걱정되는 거예요. 저뿐 아니라 남편도, 딸도 그게 걱정이었죠. 딸이 먼저 갔다 왔으니 최대한 힘이 안 들게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고는 해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너무나 걱정이 되었어요. 준비하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아마 몇 배 힘은 들었을 거예요. 여행 후 갔다 와서 먹을 남편 음식 챙기기, 독일에 있는 딸 갖다줄 음식 챙기기, 2주 렌터카로 여행할 짐 챙기기, 내가 지고 걸을 배낭 챙기기, 체력 챙기기, 동네 일 챙기기 등등.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했답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 정상 부근 눈밭에서.

◇처음 가본 유럽…그리고 드디어 = 드디어 지난 6월 6일 우리 가족은 유럽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큰딸은 순례길을 다녀오고 바로 직장이 생기는 바람에 길게 휴가를 쓸 수 없어서 우리 부부만 작은딸이 있는 독일로 향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니 작은딸이 밝은 얼굴로 마중을 나왔더군요. 1년 만에 만난 우리는 부둥켜안고 벅찬 재회를 했어요. 딸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작은딸과 나, 남편 우리 셋은 렌터카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로마, 이탈리아에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전 유럽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순례길을 걷기 위해 파리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글·사진 박미희

오스트리아에 있는 합스부르크 마지막 왕조 박물관 앞에서 작은딸과 함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