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큰 산 지리산에게 미안해서 어쩌노"…연민의 시선으로 이웃과 생명 바라봐야

#장면 1

2001년 11월, 25년 만에 소설 〈토지〉를 탈고한 지 7년, 박경리 선생께서 평사리를 방문하셨다. 상평마을 낮은 언덕을 오르실 때, 동네의 어른들이 모두 길가에 나서서 박수를 치며 선생을 맞이하고, 선생께선 그분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으시며 그렇게도 "좋아라" 하셨다. 아마도 문인과 농부의 손이 맞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텃밭을 일구시고, 비료나 농약 대신 퇴비로 땅심을 돋우는 농부였기 때문에, 농부가 농부의 손을 마주잡을 때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기도 했을 터이고,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평사리 주민들의 착한 심성이 생각났을 터이기 때문이리. 드디어 최참판댁 마당, 마당에서 물끄러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바라보시던 선생께서 "야야 미안해서 큰일났다. 저 큰 산, 지리산에게 미안해서 어쩌노"라고 하시더니 한숨을 깊게 깊게 쉬셨다.

#장면 2

2002년 나남출판에서 소설 <토지>가 전 21권으로 출간되었다. 그 서문에 "30여 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중략)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理想鄕)이다. (중략) 그렇지 않아도 한이 많은 지리산 언저리를 파헤쳐 필시 관광용이 될 최참판댁을 바라보니 저 큰 산 지리산에게 미안하다"고 쓰셨다. 이 독백 같은 한탄은 최참판댁이 지향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큰 주장자였다.

이번 주말부터 평사리에서 '토지문학제'가 열린다. '필시 관광용'이 되어버린 문학에 빚진 공간이다. 박경리 선생께도 빚진 공간이다. 그나마 어렵게 승낙을 구한 '토지문학제'가 계속되고 있어 위안이다. 선생님의 함자를 빌려 한국문단의 인재를 발굴하고, 문학의 이름을 빌려 보다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선생님께 '염치'를 배웠으나 세상은 '몰염치'가 판을 치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도 지리산에 박혀 있는 돌멩이 하나만도 못하다"는 말씀이 가슴을 헤집는다. 큰 스승이 그리운 시절이다.

10일(토요일) 오후 평사리 최참판댁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진다. 선생께서 늘 강조하신 대로 수수하고 겸손한 상이다. 물론 재질은 브론즈다. 외형의 재질은 브론즈일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들을 지녔으면 한다.

필자는 이 동상 앞에 서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거나 상의 외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선생께서 문학을 통해 무엇을 구현하려 애쓰셨는지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고, 나아가 선생의 생명사상을 이해하려 하는 모든 독자들의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선생께서 살아오시며 손수 실천했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 넘치는 연민의 시선으로 이웃을 돌아보고, 산과 들의 넘치는 생명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싶다.

한국문단의 어머니이자 유기농의 대가였던 선생님을 추모하는 '토지문학제'가 쓸쓸한 사람들을 보듬어내는 그러한 따뜻한 문학 한마당이었으면 더 좋겠다. 그리고 "필시 관광용"이 되어버린 최참판댁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행사들도 선생께서 지니신 자연에 대한 애정, 지리산에 대한 미안함에 화답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학은 늘 우리 주변에 있으나, 우리는 늘 문학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영욱.jpg
문학은 상처 받은 자를 쓰다듬는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위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큰 작가 박경리를 기리는, 선생의 '생명사상'을 본받는 그러한 문학제가 되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