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횡령·분식회계 혐의 항소심 앞두고 탄원 줄이어.…노조·시민단체도 "경영 실패했지만 사회적 책임 충실"

배임·횡령, 분식 회계 혐의로 재판을 앞둔 경영인에게 도내 각계각층 인사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나섰다. 한 기업주를 위해 이렇게 많은 지역민이 나선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오는 14일 예정인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1877통에 이르는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됐다. 특히 경남에서는 지역 상공계-노조-협력업체-시민단체 대표까지 탄원서 대열에 동참했다.

7일 탄원서를 낸 이들은 "강 전 회장은 실패한 경영인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했던 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말 1심 선고(징역 6년) 때도 전직 임직원과 경남 지역민을 중심으로 탄원서 1000여 통이 제출됐다.

강 전 회장 선처 요구에는 노사, 기업인·시민단체가 따로 없었다. 최충경 창원상의 회장을 비롯한 지역 기업인들, 옛 STX계열사 협력업체 대표들, STX그룹의 모태 기업인 STX엔진 노조(금속노조 STX엔진지회)의 모든 전직 위원장(5명)과 STX조선 노조 전직 간부들, 이흥석 전 민주노총 경남본부장·권영길 전 국회의원 등 지역 노동계 인사, 심지어 시민단체 대표까지 탄원서를 냈다.

지난해 4월 15일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돼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이송되는 모습. /연합뉴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이 도대체 왜 강 전 회장 선처를 호소하고 있을까?

지역 상공계를 대표한 최 회장은 "강 전 회장이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조선업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수직 계열화하는 등 경영인으로서 실수를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엄청나게 이바지했고 자기 재산 축재를 위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STX조선·엔진·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 본사를 서울로 옮기지 않았다. 또 정말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했다. 그래서 지역 기업인·협력업체·노조·시민단체 등 지역사회가 전방위로 나서는 것"이라고 탄원서 제출 이유를 밝혔다.

쌍용양회 관리부장 때부터 강 전 회장을 봐온 정성기 전 금속노조 STX엔진지회장은 "강 전 회장 시절 파업도 하고 서로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노조를 탄압 대상으로 여기진 않았다. 물론 더 큰 이유가 있다. 그의 마지막 선택 때문"이라고 했다.

정 전 지회장은 "그룹 경영 위기 직후 독대한 자리에서 강 전 회장은 '그룹 오너가 살려면 법정관리가 더 유리하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회사가 어려워졌는데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현장노동자(그룹 직원) 다수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정리해고도 뒤따를 것이다. 그것만은 막고자 자율협약으로 가기로 했다'고 했다"며 "진심이 느껴졌다. 법정관리로 갔다면 협력사들도 납품 대금을 못 받는 등 손해가 상당했을 것이다. 어느 그룹 총수가 이런 선택을 하겠는가. 집도 경매에 넘어가고 그는 빈털터리다. 과잉 투자 책임은 져야 하지만 개인 욕심은 챙기지 않았으니 형량이 최소화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현직 노조 간부들은 영치금을 모아 전하기도 했다.

협력업체들 평가도 비슷했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70∼80개 협력사 대표들이 탄원서를 냈다. 어지간한 경영인이라면 위기 때 법정관리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나 때문에 협력업체에 피해를 줄 수 없다'며 자율협약을 선택했다"며 "회장으로 있을 때도 모기업 이익만을 위한 단가 후려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STX멤버스'를 만들어 각종 모임·연수·교육에 강 전 회장이 협력업체들과 직접 함께했다. 어느 그룹 총수가 그러겠냐"고 반문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장은 "다문화어린이도서관을 지을 때 3억 원, 운영비로 해마다 5000만 원을 후원하고, 이주민 축제인 맘프에도 1억 원을 후원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많지만 강 회장처럼 기업 이윤을 이주민과 함께 나눈 기업주는 별로 없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뭔지 아는 경영인이었던 만큼 정상 참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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