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박을봉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장구마을 이장

깊은 만을 낀 마산은 정작 바다를 가까이 접하기 번거롭다. 그나마 깨끗한 바다를 살갑게 접할 수 있는 지역은 마산합포구 구산면 정도다. 구산면과 다리로 이어진 섬 저도는 관광 산업에 신경 쓰는 창원시가 눈여겨보는 곳이다. 장구마을은 저도로 건너가기 직전에 있는 작은 어촌이다. 조용한 선착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눈에 걸리는 작은 어선과 섬이 소박한 즐거움을 안기는 곳이다. 박을봉(56) 이장이 장구마을 살림을 맡은 것은 올해로 15년째다.

"작은 어촌을 일찍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20대부터 마산 자유무역지역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IMF(외환위기)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장구마을로 돌아오게 됐지요. 회사 다니면서 운영했던 작은 횟집도 정리했습니다."

고기잡이는 고작 어릴 적 부모님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였다. 큰 마음 먹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막상 정착하기는 만만찮았다. 아내가 어렵게 구한 500만 원을 밑천 삼아 작은 배를 구해 바다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박을봉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장구마을 이장. 박 이장 뒤로 보이는 섬이 장구섬이다. /이승환 기자

구산면 21개 마을 가운데 하나인 장구마을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장어, 도다리, 딱새, 잡어 등을 잡아 생계를 꾸린다. 어선은 25척 정도 있으며 60가구 110여 명이 산다. 마을 이름인 '장구'는 선착장에서 보이는 섬에서 나왔다. 짝을 지어 봉긋 솟은 섬 한 쌍이 장구처럼 보여서 예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지난 2001년 장구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막 자리 잡은 젊은이에게 큰일을 맡긴다.

"젊은 사람이라는 게 컸던 것 같아요. 좋게 봐주고 마을 사람들이 믿어줬습니다.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때 이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좋은 위치에 있게 됐고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이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마주친 과제는 식수 문제였다. 마을 위쪽은 물이 풍부했지만 아래쪽 마을은 마땅한 식수원이 없었다. 상수도 건설이 숙원 사업이었는데 막상 공사에 들어가니 짠물이 들어와 곤란했다. 가까스로 마을 근처에 있는 절에서 식수원을 찾아 상수도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마산시청에서는 상수도를 연결해도 고작 2년 정도 쓸 물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식수로만 쓰기로 하고 물길을 텄다. 그렇게 2002년에 설치한 상수도는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어요. 만약 어르신이 이장이었다면 행정과 의논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담당 공무원과 제가 연배가 비슷하니 얘기가 잘 통하는 면이 있었지요."

박 이장은 상수도 설치와 더불어 마을회관 신축, 마을 도로 포장 등을 큰 성과로 꼽았다. 20년이 넘어 낡은 마을회관은 지난 2009년 새 건물을 준공했다. 온통 흙길이었던 마을 길을 새로 포장한 것도 그때였다.

"이장을 하면서 다른 마을을 보니 우리에게 없는 것이 보여요. 그러면 어떻게 사업을 추진했는지 물어보곤 했지요. 그렇게 배우고 나서 우리 마을도 뭔가 얻을 수 있도록 뛰어다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믿고 일을 맡긴 만큼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박 이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장 일을 맡은 것도 그렇고 무슨 일을 추진할 때마다 잘 진행됐던 것도 운이라고 했다. 15년째 이장을 하다 보니 예전에 함께 마을 일을 고민했던 공무원이 지금은 시청 요직에 있는 것 역시 운으로 돌렸다.

"관청에 말이라도 붙이고 싶어서 중간에 아는 사람 거치고 하는 것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니 시청에 한 번씩 가면 말 붙이기가 쉽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복입니까."

박 이장이 꼽은 마을 숙원 사업은 방파제다. 선착장 앞으로 피항할 수 있는 방파제 시설이 갖춰지면 어촌 사람들 생업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피항을 하려면 진동 고현항으로 배를 몰고 가야 한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때 마을이 큰 사고도 겪었던 만큼 창원시가 긍정적으로 고려하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까지 저를 좋게 봐주고 아껴준 주민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뜻에서 임기까지 마을을 위해 헌신적으로 애쓰겠습니다."

박 이장은 현재 구산면자율회 회장과 창원시 이통장연합회 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이미 15년째 이장 일을 하고 있지만 56세 이장은 아직도 이 바닥에서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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