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경제 손실 막기 위한 야간 점멸신호 운영, 시각장애인에겐 재앙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 대부분은 야간 시내 주행 때 속도를 제법 낼 것이다. 차량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주황색(혹은 적색) 차량신호가 깜빡깜빡하는 '점멸신호'가 많기 때문이다. 주의만 기울이면 멈춤 없이 지날 수 있다. 그런데 운전자 처지에서의 이런 편리함이 교통약자 불편 혹은 위험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야겠다.

경찰의 '교통신호등 점멸 운영 기준'에 따르면 '교통량이 한산한 심야시간(오후 11시~오전 6시) 교차로 신호등은 해당지역 교통상황을 고려해 점멸신호로 운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한 교차로는 '주도로와 부도로 통행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자 주도로는 황색점멸, 부도로는 적색점멸로 운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운전자는 황색점멸 때는 서행, 적색점멸 때는 일시정지해야 한다.

경찰은 지난 2009년 7월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야간 점멸신호를 대폭 확대했다. 야간 교통 효율적 운영, 불필요한 정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줄이겠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경남지방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도내 신호제어기 2944개 가운데 야간 점멸 운영은 1367개다. 신호제어기와 신호등 개념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를 바탕으로 대략 따져도 신호등 10개 중 4개 이상은 점멸 운영한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운전자는 반길 일이지만, 반대로 보행자 처지에서는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알아서 건너는 것이 상책이다. 무단횡단 심리도 커진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점멸신호 구간을 혼자서는 건널 방법이 없다. 낮에는 음향신호기 도움으로 신호등 건널목을 건널 수 있다지만, 야간에 점멸 구간으로 바뀌면 음향신호기 역시 무용지물이 된다.

일부 점멸 신호등에는 보행자가 신호를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기기가 있지만, 이 역시 시각장애인 이용과는 거리가 멀다.

경남점자정보도서관 장상호 관장은 "야간에 신호등이 작동 안 하면 시각장애인은 행인 도움 없이는 건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남지방경찰청 교통계 관계자는 "교통은 상대적이기에 차량과 보행자, 교통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신호등 점멸 운영에서도 차량·보행자 모두가 만족하는 지점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중간선에서 맞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보행권에 대해서는 "해당 점멸 신호등에서 불편을 겪는 분들 의견이 있으면 정상신호로 돌릴 수 있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시각장애인들 스스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 곳곳이 그러하듯, 교통신호등 점멸 운영에서도 약자들 권리를 빼앗아 다른 쪽에 편리함을 더해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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