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 임소라·이가은 씨

'청운의 꿈'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다. 이 사회에서 내 이름 석 자 드날리고픈 바람 말이다. 그 생각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임소라(26·창원대 의류학과 4학년), 이가은(24·창원대 미술학과 3학년) 씨도 꽤나 옹골졌다.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2년간 유학하고 국가고등기능장까지 취득해 돌아왔으니 말이다.

2012년이었다. 프랑스 숄레국립패션스쿨(BTS de Lyce de la mode Cholet en France)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서 유학 설명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창원대에만 있지 말고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말이죠."(소라) "의류 쪽으로 공부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있는 거를 알고 '이때다'해서 바로 지원했어요."(가은)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는 소라 씨. 고등학생 때였나,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의(衣)'가 떠올랐단다. "제가 계획하고 제작한 옷을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면 엄청 뿌듯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빠져 패션잡지 에디터도 생각해봤지만 대학 들어와서 만드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어요."

패션 디자이너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임소라(왼쪽)·이가은 씨. /류민기 기자

패션디자이너와 화가가 되겠다는 가은 씨는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한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접했다. "주위에서 '너 왜 다른 분야를 하냐, 이것저것 한다' 이야길 듣곤 해요. 근데 저는 같은 분야라고 생각해요.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면 패션디자이너는 사람 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똑같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소라·가은 씨가 교환학생으로 뽑히고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언어였다. 2012년 6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국내 학교에서, 5월부터 8월까지 프랑스 현지에서 공부하고 9월 입학했다지만 프랑스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은 어렵기만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들려서 수업시간에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과제도 너무 많고 녹음기를 듣고 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어떻게든 한국어로 배우려고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불어를 불어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했어요."(소라)

임소라 씨 작품.

눈치가 느니 들리는 단어를 조합해 이해를 했다. 친구들도 두 사람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부딪쳐 배우는 '생존 불어'에서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됐다.

소라 씨는 가죽 제품·제화를, 가은 씨는 의복 구성을 배웠다.

둘 다 한국에서와 달리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는데, 목표는 국가고등기능장 취득. 프랑스 패션계에서 커리어에 큰 영향을 주는 자격증이었다. 2년간 9개 과목을 분기에 걸쳐 시험 본 후 합산, 일정 이상 평균 성적을 받아야지 딸 수 있었다. 그 과목이라는 게 전공을 비롯해 영어, 경제, 화학 등 포괄적이었다.

"기업체에서 7주간 인턴을 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저는 디즈니랜드랑 무샤하비에(Moucharabieh)에서, 소라 언니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에서 일을 했죠. 현장 용어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 메커니즘이 진행되는지 확실히 알게 되더라고요. 저는 모델리스트 밑에서 배웠는데, 제가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안 뒤로는 디자이너를 만나러 갈 때 데려가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일에 대한 꿈이 더 커진 거 같아요."(가은)

이가은 씨 작품.

2년이라는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언어 습득하랴 학교생활하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인턴 과정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논문으로 만들어 제출하고 감독관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마지막 시험은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8월 한국에 왔다. 소라 씨는 학점을 다 이수한 채 휴학 중으로, 현재 서울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은 씨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 프랑스로 가서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려는 가은 씨와 달리 취업전선에 뛰어든 소라 씨. 그녀의 목표는 뚜렷했다.

"저는 핸드백 전문 PD(product developer)가 될 거예요. 시몬느(핸드백 전문 제조업체)에서 일을 하고 싶고요. 제가 취득한 기능장은 학문적·기술적으로 최고 과정이거든요. 인턴이지만 기업체에서 일도 하고 컬렉션을 다니며 현장을 몸소 느끼기도 했고요. 이런 부분을 어필해서 취업에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40대가 됐을 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를 론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상표로 키울 것이라고.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프랑스에서 말도 잘 안 통했지만 어떻게든 성과를 냈잖아요. 이런 자세로 사회에 나간다면 무엇이라도 이루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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