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7) 진주 습지원

진주 남강에 유등이 띄워졌다. 형형색색 화려한데 유등축제장으로 들어서야만 볼 수 있다. 올해부터 전면 유료화한 축제장은 밖에서 보면 높고 기다란 가림막에 가려져 답답한 모양새다. 진주교에서 천수교까지 그렇다.

천수교를 벗어난 남강은 고요하다. 진양호 댐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남강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습지원'이다.

평거동 아파트 단지 맞은편 판문1교를 건너면 '습지원 가는 길 700m'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습지원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란다. 자연적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무성한 잡풀과 나무로 쉽게 갈 수 없었다. 자갈 바위 천지였던 남강변은 접근이 쉽지 않았다. 몇 해 전 평거동이 개발되면서 남강 정비사업이 함께 진행됐다.

습지원 징검다리. 행여 빠질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된다. /이미지 기자

진주시는 남강변 1만 9870㎡에 수생식물과 화초류, 관찰 마루, 새들의 휴식공간인 횃대, 징검다리를 갖춘 습지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자전거와 보행자가 다닐 길을 닦았다. 인근 평거 공영 무료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유등축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 차와 사람들로 빽빽한 남강을 뒤로한 채 습지원으로 향했다.

남강 상류로 거슬러가는 길이다. 눈에 보이는 강은 얕다. 밑바닥 돌들이 훤하다. 물결은 잔잔하다. 댐에서 물을 방류하지 않는다면 습지원은 움직임이 없다.

해를 마주 보고 걷는 길이라 햇볕이 따갑다. 강가에는 풀이 무성하고 오른편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졌다. 바람 소리는 시원한데 그늘이 없다. 그래서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 강을 보고 걷는다. 강 건너는 산이다. 절벽이 나오기도 한다. 산 밑 강은 어둡고 짙다. 마른 풀 냄새가 그득한 강의 윤슬이 소박하다.

습지원 입구.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문득 영화 <노트북>이 떠오른다. 중간 중간 나오는 강가가 아름다운 영화다. 남녀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강에서 노를 젓는다.

조각배 한 척이 있다면 둥둥 떠다니고 싶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못 볼 그림이다. 남강변을 따라 진주 시내를 자주 다녔더라도 못 느꼈을 풍경이다.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점점 초록빛을 잃어가는 가을 나무 사이로 길이 나있다. 습지원을 가까이서 보기에 딱 좋다.

늪지대가 나와 정글 속 같다. 까만 물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두꺼비 소리가 들린다. 물은 탁하지만 강 깊숙이 뿌리를 박은 나무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횃대는 텅 비었다.

돌다리가 이어진다. 한 걸음 내딛고 저 멀리 강을 본다. 또 내딛고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진작가들이 왜 즐겨 찾는지 알겠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한 가족이 단체 사진을 찍는다. 추석을 보내고 추억을 쌓으러 나왔겠다.

또 다른 돌다리가 나온다. 행여 빠질까 조심조심 내딛는다.

습지원에서 만난 낚시꾼.

다리가 끝나고 습지원을 향한 길이 보행로와 다시 만나는 지점에 한 낚시꾼이 있다. 낚싯대 4개를 걸쳐놓은 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아무런 기척이 없는지 낚싯대 끝에 잠자리가 앉았다. 정적을 깨고 무얼 잡느냐고 물었더니 누치란다. 가시가 많아 잘 먹지 않지만 간간이 잡혀 재미삼아 나왔다고 했다.

걸음을 멈췄다. 진양호까지 가지 않고 돌아서서 오던 길을 다시 걸었다. 해가 등 뒤에서 비춘다.

고개를 숙이고 누치를 찾았다. 오던 길 물고기를 보지 못했다. 갑자기 물결이 인다.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잘한 것들이 요리조리 헤엄치고 있다. 강바닥 색과 비슷한 몸통을 가졌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못 봤겠다.

쾌청한 날 습지원을 찾았는데 아쉽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나 비가 오는 날이 좋겠다 싶다. 단 주의할 게 있다. 습지원은 남강 상류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거나 남강댐에서 물을 방류할 때는 위험하다. 잔잔하던 습지원은 힘찬 물살을 내뿜으며 잠겨버린다.

아니면 땅거미가 찾아오기 전에 왔다면 붉은 하늘에 강이 더 멋졌겠지.

습지원은 우리가 아는 남강이 아니다.

14.jpg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