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지리산 하동에 귀촌한 예술인…시·공예 등에 행복 담으며 주민 생활 속에 뿌리내려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은 그 지역만이 가진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 줄기인 삼신봉과 형제봉, 구제봉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뛰어난 자연경관을 그려낸다. 넉넉하고 기름진 평사리 들판과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남해는 덤이다. 그래서인지 도시 삶에 지친 이에게는 삶의 안식처로, 예인들에게는 예술적 감성을 일깨우는 공간으로서 그들을 이끄는 듯하다. 현재 지리산 자락인 악양면과 화개면에 뿌리를 내린 예인들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정착한 그들은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이전보다 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동 악양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모습. /이창수 사진작가

◇지리산 시인 이원규(53·화개면 중기마을) = "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제목의 제 시입니다. 97년도에 중앙일보 기자 그만두고 그냥 서울이 싫어서 무작정 지리산 인근으로 왔습니다. 구례, 함양, 남원으로 옮겨 살면서 지리산을 돌아다녔죠. 와서 1년여 만에 쓴 시입니다. 이 시가 유명해졌는지 지리산 곳곳에 제 시비가 있더군요. 모두 제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했지만, 그냥 내버려둡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웃음). 지금 같이 사는 아내(신희지·48)도 지리산에 있으면서 만났습니다. 하동에 정착한 지 5년 정도 됐습니다. 아내는 고향이 서울이고 저는 문경입니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각자 알아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죠. 이 집은 저희 부부 소유가 아니고 월세입니다.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삽니다. 여기 집앞 풍경 보세요. 멋지지 않습니까? 섬진강과 백사장이 바로 보여서 딴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 시는 쓰지 않고 사진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제 애마인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구에서 사진 전시회도 했습니다."

이원규.

◇사진작가 이창수(55·악양면 노점마을) = "원래 강원도에 귀촌하려고 땅까지 샀는데, 월간중앙 사진기자 시절 화개면 일대 사람 관련 취재를 하면서 하동 차를 알게 되었고 차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원도는 포기하고 이곳에 정착을 했습니다. 고단한 서울 삶이 싫기도 했고…. 일 그만두고 마흔 살 때 하동에 왔습니다. 그때 제 화두가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문제였는데, 그래서 흙을 알아야겠다 싶었고, 차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과수 농사하면서 차 농사도 같이 했는데, 지금은 차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물론 차도 직접 만듭니다. 

이창수.

일부는 지인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지만 70% 제가 먹습니다. 차를 마시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입니다. 하동에 정착하면서 제 삶에서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역에서 살면서 뭔가 이타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원규·박남준 시인과 더불어 문화예술을 통해서 지역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2009년도에 지리산학교를 설립했죠. 더해서 지인 권유로 히말라야 14좌를 다니면서 사진에 담았던 일입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히말라야 전시회를 시작으로 진주와 대구에서도 열었습니다. 지금 아내하고 단둘이 살고 있는데, 여기에 뼈를 묻으려고 합니다."

◇목공예가 김용회(49·악양면 상신마을) = "학교 다니기 싫어서 고등학교 중퇴하고 대학도 안 다녔습니다. 그나마 중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유일하게 집중했던 일이었죠. 24살 때 하동 화개면에 정착했습니다. 우연하게 찾아온 기회가 저를 여기에 머물게 했습니다. 군 제대하고 겨울 지리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하동 대성골로 내려오다가 일출에 비친 쌓인 눈이 정말 멋지더군요. 풀냄새, 흙냄새도 좋았고 신세계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래 여기서 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림을 하다가 한계를 느꼈습니다. 

김용희.

하동에 정착한 이후 조금씩 배워오던 목공예가 맞는 것 같아서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동이 차가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나무를 재료로 한 차 도구를 주로 제작합니다. 개인전 11번 했는데, 모두 서울에서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여러 번 했고요. 서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명품관이나 동대문DDP 공예관 등에 제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고, 그래서인지 주로 서울이나 외국에서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작품 대부분이 한국적인 미를 살린 것이어서 그쪽으로 많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작품 활동하기에 좋은 조건이고 이곳 생활도 즐거워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문인화가 손지아(44·악양면 평촌마을) =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전남 고흥에 몇 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거친 시골 느낌이 강했지만 이질감을 못 느낄 정도로 적응을 빨리했습니다. 그 이후에 악양면에 있는 지인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길로 눌러앉았습니다. 벌써 5년이 됐네요. 아직 미혼이지만 적적하다거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여기 생활이 행복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더 불편할 것 같아요.(웃음) 원래 그림과 상관없는 조경을 전공했는데, 어릴 때부터 취미삼아 하던 그림이 저의 직업이 돼버렸습니다. 

손지아.

서양화를 그리면서 서예를 배웠죠. 그 영향 때문인지 두 가지가 섞인 문인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꽃과 나무, 벌레, 동물 등이 주요 소재입니다. 제가 사는 공간에 있는 것들이죠. 아마도 직접 느끼고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이 제 주위에 널려 있어서 작품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작품 활동 외에 지역과 소통하려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예반을 운영하고 있고 요가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서로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행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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