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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 없는 산·바다·바람…시원한 '눈맛'

[2015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5) 거제 내도-꿩 대신 닭이었으나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5년 09월 30일 수요일

혹서기인 8월을 건너뛰고 9월 16일로 날을 잡아 떠난 생태역사기행은 목적지가 원래는 거제 지심도였다. 지심도는 알려진 대로 천연으로 이뤄진 동백나무숲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멋지다. 아울러 진해만 들머리에 툭 튀어나와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들어선 일본군 포대 군사시설이 잘 남아 있는 역사유적지이기도 하다. 지심도는 또 물이 적지 않게 나고 마르지 않아 원래 살던 조선 사람들을 쫓아낸 일본군이 그 물을 갖고 수력발전을 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심도를 도는 탐방로 어느 어귀에는 내륙 산골에서 볼 수 있는 습지 생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지심도는 이렇듯 생태적으로 아름답고 독특할 뿐 아니라 역사유적까지 어우러져 있기에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주관하는 생태역사기행의 취지와 딱 들어맞는 지역이라 하겠다.

하지만 하늘이 우리 일행의 지심도 탐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승포에 있는 동백섬지심도여객선터미널에다 예약까지 했건만, 바로 전날만 해도 아무런 기상특보도 없었는데, 당일 아침이 되자 바람이 세고 물결이 높아 배가 뜰 수 없다는 통보가 왔다. 이럴 때는 사전 대비가 없으면 난감해지는 법이다. 다행히도 지심도 가는 뱃길이 뜻하지 않게 자주 끊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꿩 대신 닭으로 내도(안섬)를 예비 탐방지로 꼽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도 남서쪽 툭 트인 바다.

이러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같은 날씨인데도 어째서 지심도 가는 배는 뜨지 못하고 내도 가는 배는 뜰 수 있을까? 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지심도는 바깥바다에 있고 내도는 안바다에 있기 때문이다. 바깥바다는 같은 날씨라도 물결이 높게 일고 바람이 세게 불지만 안바다는 그렇지 않다. 장승포에서 지심도 가는 뱃길은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드는 물결을 걸러줄 만한 데가 없지만 구조라에서 내도 가는 뱃길은 서이말(鼠耳末=쥐귀끝)의 반도처럼 튀어나온 지형이 막아주는 구실을 톡톡히 해주는 셈이다. 이런 사정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주요 해전은 죄다 너른 바다가 아니고 너비가 좁고 암초가 많은 해협(=목)에서 벌어졌다. 저 유명한 한산대첩은 통영과 거제 사이 좁다란 견내량에서 벌어졌다. 원균이 목숨을 거둔,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칠천량해전도 그러하며 바로 뒤 전세를 단박에 뒤집은 명량(鳴梁=울돌목)해전도 그러하며 이순신 장군이 목숨바쳐 승리를 일군 임진왜란 7년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도 그러하다. 당시 왜군이 너르디 너른 바깥바다를 내버려두고 좁디좁은 안바다로만 기어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이는 지형지물을 상대적으로 잘 알 수밖에 없는 조선 수군한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꿩 대신 닭'으로 골라잡은 내도였지만 그 '닭'은 결코 '꿩'에 못지 않았다. 바람이 평소보다 조금 거세졌다 하지만 오히려 시원함을 더해주는 정도였고 맞은편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공곶이의 바닷가와 산자락 풍경은 지심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또 공곶이 있는 쪽을 버리고 계단을 올라 서면 왼편으로 출렁거리는 바다가 한 번 바라봄에 거칠 것 없는 기세를 보여준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무로 옷치레를 하지 않고 거친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바위들이 파도와 뒤엉기는 모습이 눈맛을 시원하게 했다.

바람의 언덕 동백숲.

게다가 내도 동백숲은 당연히 지심도 동백숲보다 사람 손을 덜 탔기에 그 자연스러운 맛은 훨씬 더했다. 생태를 전공하는 이들로부터 내도가 지심도보다 생태면에서는 오히려 낫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이쪽저쪽 기웃대다 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굳이 더 좋다 못하다를 가릴 필요야 없지만, 동백이 충분히 잘 우거져 있으면서도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지심도보다 좀더 다양한 것 같이도 여겨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간이었다.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아침 8시 출발해도 구조라보건진료소 앞에서 11시에 떠나는 배밖에 탈 수 없는데, 돌아나오는 배편이 촘촘히 있으면 좋으련만 오후 1시 다음에는 오후 3시였다. 그래 두 시간만에 한 바퀴 돌 수밖에 없어 너나없이 걸음을 서둘렀지만 그래도 할 일은 다해서 끼리끼리 그늘이 시원하고 경치도 좋고 자리도 평평한 데를 골라 앉아 가져간 김밥을 맛나게 먹으며 얘기를 주고받는 즐거움도 누렸다. 발 빠른 어떤 이는 거기 바다서 잡은 낙지를 삶아달래서 소주까지 한 잔 곁들였고 거기 사람들이 잡아 말린 멸치 등등도 몇 무더기 팔렸다. 시간이 30분만 더 있었어도 내도 사람들 매상이 좀더 올랐을 텐데.

바다를 바라보며 억새 우거진 길을 걸어가는 모습.

그렇지만 한적함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아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도지만, 그래도 휴일이나 주말에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밀려든다. 너무 많이 알려져 있는 지심도는 평일에도 사람이 쏟아지지만 내도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전부였고 앞에도 뒤에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내도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정한 국립공원 명품마을이다. 제1호 전남 진도군 관매도(다도해해상국립공원)와 더불어 2012년 2월 제2호로 올랐다.

내도에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에는 시간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예정에 없었지만 도장포 바람의 언덕을 잠깐 들를 수 있었다. 길 따라 내려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쐰 다음 일행은 통영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시장은 이웃한 동피랑마을이나 통제영 일대와 어울려져 있어 한층더 명품이 되고 붐비게 됐다. 이날은 추석을 앞둔 때문인지 사람이 좀더 붐비고 활기가 좀더 나는 느낌이었다. 생선이나 건어물 따위 시장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고 일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잠깐이나마 동피랑에 올라갔다 오는 일행도 있었다.

바람의 언덕이 있는 거제 도장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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