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힘 '브랜드'] (1) 제주올레 '간세'

우리 동네 또는 마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모든 동네에는 유무형 자산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민이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따져보면 아쉬운 구석이 있습니다. 지역민과 자산을 이어주는 것이 '브랜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브랜드는 단순한 상표만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가 지향하는 바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고, 동네 경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한 국내외 사례를 만나보고, 경남에선 브랜드가 필요한 곳은 없는지 고민해봤습니다. 매주 목요일 다섯 차례에 걸쳐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제주 여행객 3~4명 중 1명이 올레길을 걷는다고 한다. 이름난 올레길과 달리 '간세'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간세'는 제주 올레의 상징이다. 제주도 사투리로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간세다리'에서 따온 것인데, 천천히 길을 걷고 여유 있게 여행하자는 철학이 스며 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2010년 현대카드 디자인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한 이정표 '간세 사인'을 만날 수 있다. 역시 조랑말 모양인 '간세인형'도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자투리 옷감과 버려진 천이 제주 여성의 손을 거쳐 열쇠고리, 장식품, 쿠션 등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간세라운지 내 체험장.

◇간세인형에 숨은 철학 = '간세인형' 제작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중국 등 해외 공장에서 인형을 찍어내지 않고 제주 사람이 직접 만들겠다.", "헌 옷감과 자투리 천을 활용하는 친환경 가치를 살리겠다."

제주 여성 10명 정도가 모여 시작한 일인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간세인형공방조합이 꾸려졌고, 제주로 시집온 다문화가정 여성들도 합류했다. 특히 이주 여성들은 중국인 관광객과 소통할 수 있는 중국어권 여성이 아니면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간세인형 제작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도 할 수 있었다. 현재 제주 전역 25명 여성이 간세인형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간세인형공방조합 구성원이다. 필리핀, 중국, 일본 등에서 제주로 정착한 이주여성 5명도 포함돼 있다.

간세인형은 제주올레 안내소와 CU 편의점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일반 간세인형과 열쇠고리는 1만 5000원. 연간 매출 2억 원 정도를 내고 있다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여기는 실정이다. 수익은 인형 제작자, 유통·자재 비용, 사단법인 제주올레 후원금(올레길 유지·관리 등)으로 삼등분한다.

간세인형 제작 모습.

제주올레 안 사업단 형태로 있던 조합은 최근 제주올레 아카데미 길동무(해설사) 프로그램과 함께 독립 법인으로 거듭났다. 조합과 길동무 쪽이 함께 출자해 유한회사 퐁낭(팽나무의 제주말, 마을 중심이 되는 나무)을 지난해 말 창립했다. 길동무는 올레길과 연계한 특화 여행 상품을 만들고 운영하며, 조합은 간세인형 체험과 판매 등을 맡는다. 올해 중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간세라운지의 탄생 = '간세'라는 브랜드는 확장하고 있다. 이달 4일에는 간세라운지(070-8682-8651, 오전 9시~오후 10시 30분 운영, 설날과 추석 당일 제외 연중 무휴)가 문을 열었다. 여행자 쉼터이자 제주 농수산물을 활용한 음식과 제주 마을 자원으로 만든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은 "간세를 브랜드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고, 간세라운지 핵심은 간세인형을 비롯해 지역 커뮤니티들과 제주올레가 같이 만든 문화 상품들, 제주의 로컬푸드 등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려고 만든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다양한 상품을 체험하고 사갈 수 있고, 앞으로 간세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상품을 더 내놓아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고 했다.

제주시 관덕로8길 7-9(옛 일억조 식당)에 마련된 간세라운지는 위치도 의미가 있다. 올레길 17코스 후반이면서 이 일대는 30년 전 영화를 누리다 쇠락한 곳이다.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간세라운지 건물도 7년간 방치돼 있다가 골조만 살린 채 제주지역 건축사 재능기부로 재탄생했다. 간세라운지가 문을 열자 인근 동문시장 상인들도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간세라운지 내부.

◇"주민들이 행복한 일" = 간세라운지에는 제주올레와 제주 마을들이 협업해 만든 '제주올레 워크숍(JEJU OLLE WORKSHOP)' 브랜드 제품들도 있다. 제주 서문공설시장 포목점 상인들이 만든 천연 염색 앞치마, 올레길에 버려진 한라산 소주병을 잘라 만든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3리 허브 공병 캔들,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녹차로 만든 녹차 초콜릿 등이다. 이처럼 간세라운지는 제주 마을 살리기와도 연결돼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주시, 서귀포시는 올해부터 지역발전위원회 공모 사업으로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을 펴고 있다. 이번 예산은 10억 원. 간세라운지 오픈 등에 쓰이고, 한 마을에 들어가는 예산은 5000만 원 안팎이다. 모자라는 돈은 마을 주민들이 부담하기도 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신산리, 세화3리, 세화2리, 추자도 등 마을 5곳에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신산리 주민들은 녹차, 녹차 초콜릿, 녹차 아이스크림을 파는 마을카페를 올 8월에 열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 카페 '바농'에서 간세인형 만들기 체험 중인 일본인 관광객들. /박일호 기자 iris15@

안 사무국장은 이야기했다. "일종의 상생 모델이다. 제주올레 비전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행복한 길, 길 위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이 행복한 길, 길을 내어준 자연이 행복한 길'이다. 마을 살리기는 기존처럼 하면 성공할 수 없다. 우리도 실험 중이지만, 올레길 마을들과 함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활성화해 주민 행복지수를 높이고자 한다. 그동안 주민들이 여행객 주머니를 여는 방법은 숙소와 점방 등 1차적인 것이었다. 마을마다 특색 있는 사업, 콘텐츠, 상품을 개발해 여행자에게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고, 주민에게는 소득이 되고 자부심을 심어줄 사업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