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후] 마산 깡통골목 설립자 후손들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 반월시장 근처에 있는 깡통골목 소공원. 창원시 통합 전인 지난 2008년 1월 완공된 곳이다. 공원 입구에는 찌그러진 깡통 조형물이 두 개 있다. 조형물마다 글이 새겨져 있는데, 하나는 마산시장 이름으로 된 소공원 조성 개요다. 다른 하나는 깡통골목 유래를 담았는데, 한국전쟁 당시 마산지역 유력 자본가 고또환갑 선생이 2층 목조 건물을 지어 시장 상인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지역 현대사에서 제법 묵직한 의미가 있는 이 깡통골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때가 있었다. 지난 2006년 6월 깡통골목 건물 일부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안전 문제가 거론됐고, 당시 마산시는 완전 철거를 결정했다. 본보는 지역 현대사를 담은 이 건물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깡통골목 유래와 설립자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고또환갑 선생의 아들 고봉덕(2006년 당시 78세) 씨를 만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2회에 걸쳐 기사를 실었다. 이후 기사를 접한 지역 시민사회가 움직였고, 결국 주차장이 될 뻔했던 깡통골목은 지역 공헌이라는 원래 의미를 살려 지금의 소공원으로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고봉덕 씨는 지난 2012년 2월 노환으로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취재하는 데 도움이 컸던 그의 아들 고굉무(52) 씨를 21일 만나 이후 이야기를 들었다.

깡통골목 설립자 고또환갑 선생의 손자 고굉무 씨. /경남도민일보 DB

"그때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깡통골목 유래를 취재해 쓴 기사에 할아버지 이름이 '고또원갑'으로 나왔더라고요. 그래도 자손으로서 할아버지 이름은 바로 잡아야지 하는 생각에 아내가 취재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던 거죠. 아마 그때 할아버지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도 할아버지 업적을 알아주면 됐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당시 취재기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난 후 고봉덕 씨는 무척 흐뭇해하셨다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 관련 기사를 확대 복사해서 액자에 넣고 보관하시면서 자주 쳐다보시고 그랬죠. 아버님으로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할아버지 일을 유일하게 아는 게 자신이셨는데, 아들 처지에서 아버지 업적을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고 생각해오신 거죠. 공원이 생기고 나서 아버님은 생각이 나실 적마다 월영마을아파트(마산합포구)에서 깡통골목 소공원까지 걸어갔다 오시곤 했어요. 제법 거리가 먼 곳인데도 그러셨어요."

이후 공원 조성 과정에서는 섭섭한 부분도 있었다.

"깡통골목 상징물을 찌그러진 깡통으로 한 건 마음에 안 들어 하셨어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것이라 보셨죠. 또 당시 마산시에서 조형물 제막식을 할 때 아버님을 안 부른 건 두고두고 서운해하셨어요."

그래도 반월시장 사람들은 고봉덕 씨를 잊지 않고 챙겼다.

"공원 조성 초기에 반월동 계신 분 중에서 뜻있는 분들이 공원에서 문화제를 열었어요. 그때 아버님이 초대받으셔서 인사말을 했지요. 당시 아버님께서는 반월시장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해준다며 아주 기뻐하셨어요."

고굉무 씨 가족에게 깡통골목은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라고 한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서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자리다, 이렇게 이 동네 분들이 여기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왔다, 너희는 그런 증조할아버지의 자손이기에 기억을 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깡통골목을 포함한 마산지역에 펼치신 뜻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이제 오롯이 우리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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