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푸른 빛은 장마에/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김광섭 '생의 감각' 중)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저 살아가거나 살아지거나 둘 중 하나인 채로 사는 건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며 살고있는 건 아닌지, 김광섭 시인이 투병 중에 느낀 '생의 감각'을 깨닫고 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오늘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누구나 익숙함에 쉽게 적응하고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 익숙함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고통과 작별한 후에 찾아올 낯선 감정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역시 익숙함과의 결별이 두렵다. 오랜 지인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난 낯섦과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했다.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느끼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새로운 관계가 주는 설렘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수밖에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는 날들. 마치 강박에 가깝도록 이러한 고통의 의식을 고스란히 치르면서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며 결별이 주는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 가던 어느 새벽,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깨달았다. 이별은 당연히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관념조차 익숙함이었다는 것을. 그러자 그때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소중한 추억들과 인연들, 그 시간들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가슴 벅차게 해주었는지 떠오르며 감사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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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이 주는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내 안에도 다시금 채송화가 한 무더기 피어나고 있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소중한 추억들, 내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인연들, 이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 나의 관념들에 대한 감사함이 모든 감각으로 나에게 전해져 온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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