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1편

8월 중순 문화부 기자 휴대전화 메시지로 좋은 기삿거리가 될 것 같다며 사연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함안군 이곡마을 이장 박미희(56) 씨가 혼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지난 몇 년 걷기 열풍이 불면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닌 거죠. 그런데 실제로 박 씨를 만나 보니 말솜씨에 순례길에서 겪은 경험의 생생함이 그대로 묻어나더군요. 그래서 말솜씨 그대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했지요. 역시나 글에서도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더군요. 아, 이 정도면 지면에 연재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순례기를 만나보도록 하지요.

제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길)를 알게 된 것은 8~9년 전이었어요. 신문에 실린 카미노 화보와 기사는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고 가슴을 뛰게 했어요. 첫눈에 반한 거였죠. 그때부터 저의 카미노 앓이는 시작되었답니다. 가톨릭 신자지만 누가 성지 순례를 간다, 유럽 여행을 간다 해도 특별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이곳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이 길을 꼭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에요. 지금부터 정말 영어도 되지 않는 50대 중반 아줌마의 무모한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기를 시작해 볼게요.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뭐지

응? 카미노? 여기가 어디지? 하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말씀해 드리고 갈까 해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이 길을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부릅니다. 다시 말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말하는 거예요. 스페인어로 카미노(Camino)는 길,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 성인을 말하지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가 걸었던 길인데, 1000년 넘게 수많은 순례자가 걸었던 길이죠. 이길 끝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있어요. 이는 '야고보(산티아고)의 별이 빛나는 들판'이란 뜻이에요. 이 도시에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이 길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셨고,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라는 브라질 작가가 이 길을 소재로 <순례자>라는 소설을 쓴 후로 더더욱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지요. 지금은 종교와 무관하게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고자 찾아온답니다. 오래전에는 일 년에 400명 정도 오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성수기 하루에만 400~500명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해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이서후 기자

아, 맞아요! 제주도 올레길도 카미노를 걷고 온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 씨가 영감을 얻어 자신의 고향에다 만든 것이래요.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금 우리나라엔 수많은 길이 생겨났고, 걷기 열풍 또한 거세지요. 그만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지금도 전 세계로부터 많은 이들을 불러들이는 길이죠.

약 800㎞로 이루어진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하루에 평균 25㎞ 정도 걷게 되고 32일 정도 걸리는 길이에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은 크게 12개 정도 있는데, 박미희 씨는 이 중 사람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고 지금도 가장 많은 이들이 걷는 '카미노 데 프란세스', 일명 프랑스길을 걸었다. - 편집자 주) 물론 개인차는 많습니다. 800㎞에는 좁은 길, 넓은 길, 산길, 찻길, 돌길, 언덕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올리브밭, 포도밭, 해바라기밭, 밀밭 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답니다. 예쁜 돌집, 이름 모를 꽃, 깨끗한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강, 또 작은 마을, 큰 도시 등을 두루 지나는 그야말로 스페인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스페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길이지요.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서로 나누고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며 친구가 되는 정말 신기한 길이랍니다. 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전 그 길이 너무나 그립네요.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산티아고 정말 가고 싶다

이렇게 산티아고는 알게 되었지만, 너무 가고는 싶지만, 그땐 가게를 하고 있었고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가고 싶은 마음이 퇴색될 법도 한데 갈수록 더욱 카미노가 그리워지는 거였어요. 그래서 20여 권의 산티아고 기행문을 읽으면서 가고픈 마음을 달래고 대리만족하며 지냈지요. 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지요. 열심히 하던 식당일을 그만두고도 바쁜 일은 계속되었고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내가 산티아고에 못 갈 이유는 너무 많았지요. 사실 주부가 두어 달이나 집을 비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50대 중반의 나이에, 동네 이장일도 맡고 있고, 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무릎도 살짝 아파지기 시작했고, 거기다 남편이 많이 아파 수술을 받고 함께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해야 했고 먹는 것도 늘 신경을 써 줘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거기다 금전적인 부분도 걱정이 되었고요. 하지만 가장 큰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영어가 되지 않는 거였죠. 카미노를 염두에 두고 문화센터 영어 회화반에 등록해 공부를 해봤지만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까먹는 실정, 능률이 안 오르니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너무 정신이 없어져 치매검사를 받을 정도였어요. (다행히 아직은 치매가 아니래요.) 그러다 영어공부는 포기를 하게 되었고 아마 중요한 영어가 되지 않으니 다른 여러 가지 핑계가 생긴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지난 설에 집에 온 큰딸이 직장일로 아주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 엄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저희는 깜짝 놀라 '네 인생인데 네가 결정할 일'이라고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정말 바로 사표를 내버렸더라고요. 무엇을 하며 머리를 식힐까 고민을 하기에 딸도 관심이 있어 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었어요. 딸도 흔쾌히 받아들였고 지난 3월에 산티아고를 걷고 오게 되었답니다. 다녀온 후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자신감도 생겼고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는 말을 하며 엄마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며 꼭 다녀오라고 권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전 안 되잖아요! ㅜㅜ 그 후로 저는 더욱더 카미노 앓이를 심하게 하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온통 산티아고 생각뿐이었지요. '어떻게 하면'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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