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 후]거창 '사과 박사'성낙삼 씨

2년 전 이맘때 거창을 찾았다. 여기저기 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파란 가을하늘, 빨갛게 익은 사과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다시 거창 사과가 떠오른다.

거창은 전국 7대 사과 생산지다. 거창 내 농업소득 3분의 1이 사과다. 1930년대 처음 재배를 시작했고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뻗어 나갔다고 한다. 일교차 심한 고지대라는 점에서 사과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사과 이용연구소, 테마파크, 거점산지유통센터가 들어서 생산·가공·유통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거창에서 '사과 박사'로 통하는 이가 성낙삼(59·현 거창농업기술센터 농업소득과장·사진) 씨다. 거창 내 사과 재배를 체계화·현대화하는 데 큰 몫을 한 사람이다.

<맛있는 경남-거창 사과> 취재를 위해 그를 만났을 때였다. 함께 있는 동안 "선생님, 별일 없으시지요"라며 인사 건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성 씨는 인사를 받으면서도 누구인지 퍼뜩 알아채지 못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부터 사과대학에서 수많은 농민에게 사과재배 노하우를 전수했다. 성 씨는 "제 말을 믿고 따른 이들이 몇 년 후 '빚을 다 갚고 이젠 돈 모을 일만 남았다'라고 할 때 보람을 느끼죠"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년을 몇 년 앞둔 그는 민간분야에서도 할 일을 찾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성 씨는 아직 거창농업기술센터를 지키고 있었다. 계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해 농업소득 분야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전보다 더 바쁜 모습이다.

"그때는 과수만 담당했는데, 이제는 농업소득친환경·농업기술 등 챙겨야 할 범위가 훨씬 넓어졌으니까요. 전국 지자체에 강의도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는 집단화된 재배단지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공은 들였지만 뿔뿔이 있는 소유주 땅을 군에서 매입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대신 개개 농가가 현대화재배를 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한다.

그의 정년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내년 말이면 40년 공직생활을 마친다. 그는 잠시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사과는 재배하기 까다로운 과수입니다. 아무리 공부했다지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다시 20대로 돌아가 이 일이 주어지면 못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하나씩 일궈놓은 것들을 생각하면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장에서 종종 설렘도 느꼈고요.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과수 하나만 잘해온 것 같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그가 쌓은 사과 관련 지식, 재배 노하우 등이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부분이다.

"제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데 신경 쓰고 있습니다. 바로 밑에 있는 담당이 사과를 직접 재배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이라,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정년 이후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워두고 있다. '사과 재배 컨설턴트'다.

"돈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의 노하우를 같이 나눈다는 의미죠. 특별히 준비할 건 없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자본금도 필요할 것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허허허' 웃고 말 뿐이다.

사과는 종이 다양한데 국내에서는 10여 종을 재배한다고 한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작황이 좋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그렇다 보니 가격 면에서는 농민 기대를 충족하긴 어려울 것이라 한다. 지금은 홍로 수확이 끝나고, '부사'라 불리는 후지에 구슬땀 흘리고 있다.

성 씨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농업행정이 농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보조금을 주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FTA 체제에서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죠. 꼭 필요한 농가에는 융자를 장기저리로 하고, 나머지는 기반·기술 구축을 통해 자생력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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