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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고 자란 고장 아름답게 가꾸는 상머슴"

[우리 동네 이장님]함양 안의면 홍문마을 서동진 이장

안병명 기자 hyabm@idomin.com 2015년 09월 16일 수요일

함양군 안의면은 역사가 매우 깊은 고장이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 현감으로 부임해오면서 이곳은 '물레방아 골'로 거듭났다. 실학의 대가 박지원 선생이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만든 물레방아가 안의면의 표상, 나아가 함양 전체의 얼굴이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안의면 홍문마을 서동진(73) 이장도 박지원 선생의 실학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이 매우 닮았다.

시작은 매우 단순했다. 지난 1994년, 그의 차분하고 우직한 성품을 눈여겨본 동네 어르신들이 "너 이장 한번 해봐라, 잘할 것이다"라고 한 게 인연이었다. 그도 그렇게 시작한 '봉사의 삶'이 21년간 계속될 줄은 몰랐다.

"집안일보다 마을 일에 쫓아다녔지요. 7남매 중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하며 살면서도 집안 돌아가는 사정은 아내에게 맡겨두고 동네 일이라면 열 일 제쳐두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동네 어르신 집집이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가 됐습니다. 허허."

그가 이장을 하면서 동네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마을은 늘 깨끗했고, 주민불편을 먼저 알고 달려간 이장이 뚝딱 해결해주는 일이 늘면서 인심도 후덕해졌다. 가장 달라진 건 마을 살림살이에 가장 필요한 마을회관이 생긴 것이다. 마을회관이라는 게 마을에서는 꼭 필요하지만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군에서 일일이 지원해서 짓기란 쉽지 않다. 홍문마을도 마을회관 건립이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었다.

함양군 안의면 연암물레방아공원에서 만난 홍문마을 서동진 이장.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방식으로 서 이장이 해결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7평 남짓 공터를 동네 한 한의원에 제공하고, 한의원 측으로부터 25평 규모의 회관을 희사받았다. 그리하여 5년 전 놀리는 작은 땅을 잘 이용해 건축비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멋진 '주민 사랑방'을 마련했다.

갑갑한 컨테이너 상자에서 마을행사를 치러야 했던 주민들 입이 함빡 벌어졌다.

165가구 350명 주민은 이렇게 마련한 고급스런 마을회관에서 대동제 행사를 어떻게 준비할지 열심히 회의도 하고, 덥고 추운 날 함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우고, 자식자랑도 하고, 오래도록 아프지 않고 지내도록 건강체조도 해가며 '더불어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

'봉사'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서 이장의 꿈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온 힘을 다해 '군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의 초석을 놓는 것, 그다음에는 봉사 때문에 하지 못했던 집안 식구들에게 사랑의 정을 더 표현하고 여유 있게 여가생활도 즐겨보는 것이다.

사실 이장이라는 직분도 할 일투성이인데 봉사욕심 많았던 그는 함양군 아동위원회, 자원봉사협의회 등 10여 개 봉사단체를 운영하거나 회원으로 있으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쁜 생활을 해왔다.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고, 대충 설렁설렁 일하는 법 없이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놓는 성미다 보니 일이 끊이지 않았다. 바쁜 이장생활 중에서도 함양군 자원봉사협의회에서 4년간 회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장은 머슴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자랑스러운 내 고장을 아름답게 가꾸는 상머슴이라는 자부심으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살아왔지요. 다행히 선한 주민들 덕분에 이장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만, 함양군 발전에 조금 더 힘을 쏟고 젊은이에게 바통을 넘길 생각입니다."

그의 말 속에는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빠지지 않는다.

실상 안의면에는 관광객이 즐겨 찾을 보물과 자랑거리가 많기도 하다. 그는 틈만 나면 여름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용추폭포, 심원정, 농월정을 찾는다. 12년 전 화재로 잃었던 농월정이 복원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찾는 이는 더 많이 늘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이 중건한 광풍루도 자주 찾아 참된 선비정신은 무엇일지 거듭 생각하며 올곧고 바른 삶을 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20여 년 동안 이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지지대이기도 했다.

"마을이장은 주민들 머슴이면서도 외지 관광객에게는 마을을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고장에 관한 것이라면 관광지 정보는 물론이고 역사적인 의미까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배우고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겠다는 자세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우리 마을을 알리고 지키는 역할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저를 지지해준 주민들 덕분입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마을이 군의 역점시책인 6차 산업을 선도해 군민소득 3만 달러 달성에 이바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의면에 오면 꼭 갈비탕과 갈비찜, 여주 요리를 먹어보라고 권하는 그는 이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마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편이 없도록 돌보고 특히 소외계층을 보살피며 살겠다며 오늘도 자신이 필요한 어르신 집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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