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100) 진주 하진농원 하왕봉 대표

30년 넘도록 단감농사 하나로 승부를 건 농군이 있다. 진주시 대곡면 유곡로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하진농원에는 이제 약 한 달 뒤면 수확할 단감이 가을 햇살을 받아 여물고 있다. 농장 관리를 잘한 덕인지 아직 푸른 빛이 감도는 단감이 싱싱하고, 나무도 튼튼해 보인다. 농장 입구에서 하왕봉(64)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부친이 물려준 땅 과수원으로 개간 = "며칠 전 서울에서 아는 경매사 한 분이 왔다 갔어요. 작년에 단감 가격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도 작년보다 가격이 높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런 기후조건이라면 올해도 풍작인데, 이미 포화상태에다 너도나도 농사를 잘 지었으니 값이 내려갈 수밖에 없겠지요. 열심히 일해 농사가 잘됐으면 그만큼 소득도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입니다." 감 농사가 잘된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네자 정색을 하며 풍작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하 대표는 고향에서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었다. 벼농사는 물론 양잠 등 다양한 농사를 배웠던 그는 벼농사로는 고소득은 어렵다는 판단에 1982년 31세 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야산을 직접 개간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직접 한 그루, 한 그루 단감나무를 심어 만든 과수원이 3.3㏊(약 1만 평) 규모다. 그게 벌써 34년 전 일이란다.

하진농원 하왕봉 대표가 수확을 한 달가량 앞둔 단감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처음 단감농사를 시작할 때는 제법 수익이 많았는데 이제는 재미가 별롭니다. 물론 지금도 다른 작목보다 시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전 같지 못하죠."

하 대표가 심은 단감나무는 대부분 만생종이란다. 그래서인지 수확기가 불과 한 달 정도 남았다는데도 아직 단감이 푸른빛을 띠는 모양이다. 30년 넘은 과수인생에서 그만큼 특별한 재배기술이 있을 듯 싶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다만 단감나무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곳 단감나무는 대개 25~30년 된 것들입니다. 지금은 한창 열매가 굵고 당도가 높을 때입니다. 하지만 관리하기에 따라 좋은 단감을 계속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500년 된 나무에서도 감을 수확한다고 합니다."

하 대표는 단감나무는 수명이 길어 수종갱신을 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 긴 시간 동안 투자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보통 7~8년쯤 자라면 수확하기 시작하지만 생산량이 적어 20~30년은 돼야 제대로 수확한다고 했다. 마치 애 키우는 것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7~8세쯤 돼야 말귀를 알아듣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이런 까닭에 과수농업은 인내심이 보통이 넘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 없는 단감, 남북교류협력사업에 포함했으면 = 하 대표가 단감농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워낙 '재미없다'라고 정색한 탓에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평당 1만 원에서 1만 5000원쯤 된다고 했다. 대략 1억∼1억 5000만 원은 된다는 이야기다. 이 중 순수익은 절반 정도란다. 하지만 하 대표는 여전히 농정당국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태풍이니 뭐니 천재지변이 있어야 가격이 올라갈 겁니다. 단감이 풍년이면 다른 과일도 풍년입니다. 따라서 모두 가격이 하락하겠지요. 농정당국이 농민들 교육시키는 것 이젠 의미가 없습니다. 가보긴 하지만 새로 배울 게 없어요. 강사도 이전에 강의했던 분이라 그 내용이고요. 수출길을 어떻게 열어줄 것이냐를 고민해야지 농민들이 농사 짓는 기술이 부족해 못 짓는 것은 아닙니다."

4H계몽운동을 위해 교육장을 마련한 하왕봉 대표.

하 대표는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교류사업과 관련해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경협사업으로 공산품을 보내는 것에 치중하는데, 남아도는 과일을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안정 차원에서도 아주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에 없는 것이 단감과 밀감입니다. 정부가 두 종류를 북한에 보내면 다른 과일 가격도 올라갈 것입니다. 농산물 가격안정 차원에서 10억 원어치 정도만 보내도 값이 안정될 겁니다. 아마도 북한에 단감 보낸다는 뉴스 자막만 나와도, 신문에 단감 사진만 나와도 농민들의 고민을 덜 겁니다. 이전 남북교류 때 도농기원장에게 건의해 단감을 몇 상자 가져갔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북한에 보낼 방법만 있다면 인근 단감재배 농민들과 의논해서 한 트럭을 만들어 보내주고 싶습니다."

가격 폭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나온 하 대표의 푸념이었다. 그는 단감을 어떻게 팔까? "판매는 세 가지 방식으로 합니다. 30년 넘게 농사를 짓다 보니 개인적인 인연으로 주문받는 물량이 있고요, 서울 농산물도매시장과 인터넷 쇼핑몰 다모아에도 납품합니다. 각각 3분의 1 정도 됩니다."

◇평생 4H운동 헌신한 하 대표 = 하진농원에는 조금 색다른 팻말이 꽂혀 있다. 바로 '하진교육농원'이다. 이름처럼 실내에는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좌탁 20여 개가 놓여 있다.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 대표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4H교육장입니다."

4H운동은 농촌 소득 증대와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1947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농촌계몽운동이다. 지성(head)·덕성(heart)·근로(hand)·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따 4H운동이라 부른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읽고 감명받아 농민 후계자를 기르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H 활동에 전념했죠." 결국 지금의 하 대표가 있기까지 그를 이끈 것은 부친으로부터 배운 것도 있지만 4H운동이 큰 바탕이 된 셈이다. 이 교육장은 결국 후계 영농인을 기르려는 하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1973년 경남도 청년 4H 연합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때부터 40년을 4H 활동에 노력했죠. 1990년대에는 진주시 4H 후원회장을 하기도 했고, 2009년부터 작년까지 경남도 4H 본부회장, 지금은 한국 4H본부 수석부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 대표는 4H 활동을 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들려줬다. 늦깎이 공부였다.

"2000년부터 4H 모임을 했는데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석·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했죠. 54살에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60에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나 스스로도 자랑스럽습니다. 주경야독, 단감농사 지으면서 밤에 공부해야 하는데 나이 먹어 공부하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죠."

후학을 가르치려는 이런 노력은 자식에게로 이어졌다. 2남 1녀를 둔 하 대표는 큰아들을 제외하고 두 명이 아버지 뒤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다. 막내 아들은 한국농업대 과수학과를 졸업하고 인근 단감농장에서 남의 농장을 책임지고 있다. 또 딸은 진영으로 시집가 그곳에서 사위와 함께 단감농사를 짓는다.

"세 명 자식 중 두 명이 아버지 뒤를 이어 단감농사를 짓는다면 부모로서 잘산 인생일 겁니다. 단감농사도 잘 지었지만 자식 농사도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지금은 과잉 생산으로 단감농사가 힘들지만 우리 자식 세대가 중심이 되는 날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소득에 훨씬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과일을 생산하지 않겠습니까?" 30여 년 과수농으로 산 하 대표 뚝심이 전해졌다. <끝>

<추천 이유>

◇경남도농업기술원 지원기획과 미디어홍보담당 김홍 = '하진농원' 하왕봉 대표는 '좋은 것을 더욱 좋게'라는 신념을 지니고 품질의 고급화를 위해 남다른 창의력으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아주 열정적인 농업인입니다. 평생을 4H회에 몸담아 경남도 4H연합회장과 도 4H본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4H본부 수석부회장으로 뽑혀 이웃 농가, 단체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농산물 부가가치 향상과 판매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4년 한국 인간상록수로 선정되기도 한 하 대표는 농촌체험교육농장으로 지정돼 학생에게는 농심을 일깨우고 젊은 농업인에게는 재배기술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지역 실정에 맞는 신기술을 보급 확산하는 대표적인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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