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 거절서 정치개혁 시작될 수도…동참 확대돼 한국사회 바뀌는 단초 되길

곧 추석이다. 최양희 거제시의원이 공개적으로 명절 선물을 거절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시의원이 되고 나서 추석 때 일면식도 없는 기업과 기관으로부터 도착한 선물을 보고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무거워 직접 쪽지를 적어서 모두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는 선물 안 보내셔도 된다. 보내면 되돌려보내고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화제가 되는 것은 이런 정치인이 워낙 드물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13년 전(2002년) 경남도의회에 딱 한 명의 의원이 있었다. 지금은 작고한 이경숙 도의원이다. 그는 당시 경남농협이 보낸 제기(祭器) 세트를 50명 도의원 중 유일하게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공개하진 않았다. 기자가 역추적을 하여 돌려보낸 한 명의 도의원이 그였음을 밝혀냈다. 그는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동료의원 입장도 있어 말하기 곤란하다"며 밝히길 꺼렸지만, 거듭되는 질문에 사실을 털어놨다.

그렇다. '동료의원들의 입장'이라는 건, 내가 돌려보냈음을 공개하는 순간 동료의원들이 받았음을 알리는 결과가 된다는 뜻이다. 최 의원의 공개선언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동료의원 질시와 힐난, 왕따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어렵다. 또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는 지역사회에서 그런 기관과 기업 선물을 거절한다는 것은 오로지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이고, 나 또한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뇌물도 아니고 고작 명절 선물 안 받겠단 말에 뭘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겠지만, 나는 한국 정치개혁, 행정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은 일부터 거리낌이 없어야 모든 일에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 의원이 인용한 목민심서의 '선물로 보내온 물건은 아무리 작아도 은혜로운 정이 맺어지면 이미 사사로운 정이 행해지는 것'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알게 된 취재대상 기관이나 기업에서 보내온 선물은 내 것이 아니다. 그걸 내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는 선물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두고, 들어온 선물은 노동조합이나 기자회에서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탁하고 있다. 기탁한 선물은 일일이 영수증을 받아 애당초 보내온 기관이나 기업에 우편 발송을 해드린다. 그렇게 처리한 선물 목록은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독자에게 공개한다.

모든 반란은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일어난다. 신영복 선생도 "중심부는 기존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공간이 못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 주류언론이나 국회의원에겐 아예 기대하지도 않는다.

김주완.jpg
최 의원의 선언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지방의원들이 경남에서부터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동안 공개하진 않았지만 선물을 거절하거나 경남도민일보처럼 처리하는 양심적인 의원들도 제법 있는 걸로 안다. 이젠 공개하자. 또 어떻게 아는가. 경남발(發) 선물 공개선언이 한국정치와 한국사회를 바꾸는 단초가 될지.

참고로 나는 최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