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주택가 커피숍 운영하는 이미은 씨

"롱블랙 한 잔 주세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롱블랙, 피콜로라테, 플랫화이트는 너무 생소한 이름의 메뉴들이다. 시내 곳곳마다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는 다른 메뉴판이 눈길을 사고잡고, 가게 안에 걸린 호주 국기가 눈에 띄는 곳. 창원 사파동 주택가에 위치한 피콜로라떼다.

커피전문점이 골목상권에도 자리 잡는 요즘. 피콜로라떼는 주택가에 떡 하니 문을 열었다. 작은 공간, 생소한 메뉴에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고자 인근 주민들이 많이 찾는 단골집이 되어가고 있다.

사장인 이미은(25) 씨는 "호주 국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호주식 생활 커피를 지향한다"면서 "메뉴들 모두 호주에서 파는 메뉴들이다. 아마도 호주에서 판매하는 커피메뉴만 있는 곳은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러운 설명을 이어갔다.

피콜로라떼가 추구하는 것은 커피의 맛, 그리고 동네주민들간 정이다.

미은 씨가 커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조리고를 졸업하고 음식보다는 서비스업에 좀 더 관심이 생긴 그는 호텔 관련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서울에 있는 한 호텔에서 공개실습을 받던 그는 조언을 받았다.

창원시 사파동에 있는 피콜로라테를 운영하는 이미은 씨. 그는 커피라는 문화를 판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박종완 기자

호텔에서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라는 것. 간단한 회화조차 안되면 호텔에서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 말 한 마디가 미은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개실습을 끝내고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어학연수 갈 비용을 벌고 있을 때예요. 당시 단골손님이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해주셨어요. 당시에는 호텔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 1년 남짓 함께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말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죠."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이 커피였다. 당시 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을 한 변호사를 비롯한 사무소 직원들이 커피를 좋아해 매일같이 한 커피숍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렇게 커피에 관심을 지닌 뒤 필리핀-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 커피생활문화권인 호주로 커피유학을 떠나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마음을 굳혔음에도 떠나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

"2012년 말에 좋아하는 사람이 운명처럼 생겼어요. 지금의 제 남편이죠. 덕분에 호주 유학은 잠시 미뤘어요."

그러고 지난 2014년 4월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평범한 삶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상황에도 조건을 달았다. 호주에서 커피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달라는 것. 다행히 배려심 많은 남편 덕에 신혼생활 6개월 만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이라는 커피유학 시간이 생겼다.

"커피생활문화권의 여러 나라 중 제가 특별히 호주로 떠난 이유는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호주에서 느낀 것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많지만 작은 마을, 골목마다 커피숍이 있고 작은 커피숍이라도 바리스타가 꼭 한 명씩 있다는 것이었죠. 3개월간 매일 커피를 맛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특히 호주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원두의 차이였고, 스폐셜티원두가 주류라는 것이었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간 한국과 외국의 차이점에 대해 하나하나씩 정리를 해나갔다. 경영과 관련된 것에서 한국은 커피를 판매하는 것은 문화를 영위해나가는 것이지만 장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값싼 원두에 많은 물을 넣어 양은 불리고 맛은 연한 커피를 적지 않게 판매한다는 것이다.

미은 씨는 "한국은 물커피, 라테는 우유에 주력하는 가게들이 제법 보이는데 사실 원두가 가장 중요한데 이 부분을 허투루 넘기는 곳이 많다"면서 "호주식 커피를 지향하는 우리 가게는 커피양이 적어보이지만 투샷으로 커피를 제공한다. 적게 느껴지는 것은 물이 적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식, 호주식이라는 명확한 정의는 없다. 하지만 미은 씨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지론을 확실히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외딴곳에 위치했지만 점심시간에는 늘 손님들이 붐빈다. 좋은 거점도 아니고 멋들어진 인테리어가 갖춰진 곳이 아니지만 맛있는 커피, 진짜 커피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한 단골 손님은 "상술로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매일 찾게 된다. 다른 커피숍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