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보고자 국토 대종주…"편견 깰 수 있었던 알찬 경험"

'1일 차답게 신나게 시작했다. 걷다 보니 금방 경기도 성남에 진입했다. 날아다니는 비행기와 헬기를 보면서 걸었다. 하지만 가벼운 발걸음도 딱 거기까지. 광주로 넘어가는 국도는 내 의욕을 뺏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에 국도라 그런지 무척이나 위험했다. 보행자나, 운전자 중 한 명이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그 자동차는 나에게 온다.'(권진수 씨 페이스북에서 발췌.)

300㎞. 서울에서 창원(마산)까지 지도에 선을 쭉 그었을 때 거리다. 국도나 4대 강 자전거 길을 따라 걸었다고 하니 더 길고 험한 여행이었을 터.

하지만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 먼 거리는 돌부리처럼 가벼운 장애물일 뿐이었다. 여기에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힘을 낼 수밖에. 서울 망원동에서 마산까지 걸어서 나 홀로 국토 대종주를 하는 권진수(23) 씨 여행기다.

권 씨는 장거리 연애 중이다. 창원시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한 달에 2번 이상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도보여행을 한 권진수 씨.

"아는 동생이 장거리 연애하면서 드는 차비나 시간을 물어봤어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줬죠. 근데 생각보다 돈도 꽤 들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더군요. 그래서 걸어서 만나러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죠. 여자친구에겐 걸어서 가보겠다고 통보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평소 시간이 나면 무박 여행을 자주 하던 그였다. 제주도를 빼곤 웬만한 곳은 모두 혼자서 찾아다녔던 경험 때문에 걸어서 국토 대종주를 하겠다는 결정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권 씨는 3일 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멘붕(멘탈붕괴)' 상태가 온 것이다.

"첫날부터 발목을 삐는 바람에 멘붕이 왔어요. 4일 차까지는 정말 힘들었고요. 여행을 떠나기 전 이것저것 기대하고 계획했던 것들이 한둘씩 틀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따뜻한 정과 인심을 느끼는 그런 걸 기대했는데 아니었죠. 혼자 자고 밥을 먹는 것도 외로웠고요."

사람이 그리웠던 권 씨는 다행히도 서울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기대했던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충청북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저씨께 길을 물어봤어요. 설명을 해주시고는 복숭아를 주시더라고요.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어요. 울컥했죠."

여행을 떠나기 전 혼자서 정한 조건 중에 '히치하이킹을 활용하자'는 게 있었다. 하지만 권 씨가 도로에서 손가락을 들지 않아도 어느새 알아서 차를 세워주는 사람들이 있어 바랐던 후한 인심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이 참 많지만, 권 씨는 '편견'을 깼다는 점을 높이 샀다.

"서울 사람이 듣기엔 경상도 사투리가 참 사나워요. 하지만 경상북도 문경에서부터 느낀 게 '말은 말일 뿐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짧고 강렬했지만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라는 걸 느꼈죠. 마을 어귀에 앉아계신 어르신들께 말을 걸면 처음엔 경계하시더군요. 하지만 진심을 담아 대화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가족사부터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모두 해주시더라고요. 이번 여행은 제 편견을 깰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입니다."

지난 12일은 여자친구와 만난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힘들고 외로운 여행이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자친구'이지 않을까. 그러나 권 씨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애써 담담하게 한마디를 남겼을 뿐. "오경이에게 장거리 연애한다고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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