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5) 산청 남사예담촌

예상과 아주 다르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산청 '남사예담촌'에 닿았을 때, 내 멋대로 상상했던 풍취가 아니었다. 섣부른 선입견은 여행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남사예담촌은 이미 유명하다.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이름을 알리면서 관광버스가 섰다 가는 명소가 됐다.

오래전부터 경북 하면 안동 하회마을, 경남 하면 산청 남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고 수많은 선비가 과거에 급제해 가문을 빛내던 학문의 고장이다.

'예담촌'이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옛 담의 신비로움과 전통과 예를 중요시하는 마을처럼 단정한 마음가짐을 담아가자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옛 돌담길은 등록문화재로 등재해 보존 관리되고 있다.

지리산 길목에 있는 남사마을에는 1700년부터 1900년 초에 지은 전통 한옥 40여 채가 남아 있다.

남사마을 돌담길

담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무작정 걸으면 금세 길을 잃는다. 누군가의 집 대문에 가로막혀 발길을 돌려야 하고 마을을 벗어난 큰 도로가 나와 되돌아가야 한다.

남사예담촌 입구에 큼지막하게 걸린 지도를 보고 최씨고가, 이씨고가, 예담한옥을 찾았다. 모두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한옥의 진수를 보고 싶었다.

최씨고가와 이씨고가는 을씨년스러웠다. 분명히 관광객 숙소로도 쓰인다고 들었는데 분위기는 스산했다. 우선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오래된 나무냄새에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닫힌 방문을 열기도 긴장됐다. 방안 속 들춰진 새까만 구들장에 식은땀이 흘렀다.

1920년에 지어진 최씨고가는 부농이었던 주인이 사대부집을 모방해 화려한 모양새를 강조했다. 한옥 특유의 안정적이고 소박한 멋은 없다.

남사예담촌 이씨고가 대문
이씨고가의 마루

이씨고가를 찾아 굳게 닫힌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따듯한 햇살이 들어오는 정원과 마주했지만 세월에 바랜 한옥의 위엄은 컸다. 사랑채, 익랑채, 곡간채가 200년이라는 세월을 이기고 있었다. 선뜻 앉지도 들어가지도 못했다.

마을 주민이 사는 한옥 몇 채는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군데군데 현대식 벽돌집과 음식점에서 새어나오는 말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남사예담촌은 오래된 한옥을 제쳐놓는다면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오래전 황토를 발라 하나하나 올렸을 담장이 있는가 하면 최근 보수된 담장은 허여멀건해 어딘가 어색하다. 기와도 그렇다. 세월을 입은 기와는 새로 얹어진 말끔한 기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남사천 너머 보이는 유림독립기념관과 국악전수관의 신식 한옥은 남사예담촌과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왼쪽의 황토 담장과 오른쪽의 시멘트 벽돌로 쌓은 벽.

돌담과 넝쿨, 흙길, 520년 된 향나무와 650년 된 감나무는 옛것의 정취를 물씬 풍기지만 남사예담촌 입구에 고깃집을 짓는다는 인부와 남사천 멀리 들려오는 음악소리, 국도를 획 지나치는 자동차는 온전한 풍경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남사예담촌은 한옥 특유의 맛이라기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오묘하다.

여행 막바지에 들른 예담한옥이 인상 깊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반갑게 맞으며 편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인사한다. 남사예담촌에 650년 된 감나무는 크기가 작지만 아직도 감이 잘 열리고 있으며 고가에 모두 사람이 산다고 알려줬다. 최씨고가는 최근에 서울에 살던 주인이 내려와 머문다고 했다.

예담한옥 입구

예담한옥은 문화재인 옛 담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집이다. 남사예담촌 입구 도로 건너에 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다. 돌담 밑 작은 정원에서 편히 쉴 곳 없던 두 다리를 뻗었다.

사실 마을을 들여다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설레고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일상공간에서 익숙해져 버려 무감각해진 나의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낯섦은 큰 기쁨이지만 그들에게는 무례가 되는 일이 될 수 있어 편치 않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라는 남사예담촌을 1시간짜리 구경거리로 보면 감동은 반으로 줄어든다. 어느 때보다 고요한 마음으로 집중해야 그 시절 한옥과 돌담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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