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조례, 그것이 알고 싶다

"조례?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있나."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도민이 상당하다. 조례는 법령보다 아래에 있는 법규라서 그다지 위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홍준표 도지사 취임 이후 터졌던 다양한 현안들, 특히 진주의료원 폐업, 뒤이은 진주의료원으로 서부청사 이전, 학교 무상급식 중단,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 등은 모두 조례 제·개정으로 사태가 일단락됐거나 사태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 학교 무상급식 사태가 터졌을 때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이 '학교 무상급식 지원 조례'를 개정하려던 주민발의 운동도 조례와 관련된 사례다.

이렇듯 조례는 우리 삶의 향상과 퇴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꼭 알아야 할 조례 관련 사항 몇 가지만 짚어본다.

◇법규 내 조례 위상 = 우리나라는 연방국가가 아니라서 광역행정기관을 지방정부가 아닌 광역자치단체라고 부른다. 또한, 연방법과 지방법 구분도 없다. 연방국가에서 지방법이 곧 조례라고 단순 비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위상을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흔히 '법규'라고 하면 법률과 규칙을 이르는데 법규 체계는 '헌법-법률-시행령(대통령령)-시행 규칙(부령)-광역자치단체 조례-기초자치단체 조례' 순으로 구성된다.

현행 지방자치법(22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안의 범위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법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령'은 법률과 시행령, 부령 등 법 형식을 의미하지만 이런 법률에 따라 중앙부처의 장 등이 정하는 행정법규(훈령고시 등)가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이 인정되는 국제법규(한미자유무역협정 등)도 이에 포함된다. 따라서 조례를 만들려면 근거 법령이 반드시 필요하고 상위 법령과 충돌하거나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시민사회에서는 이 법률이 너무 지방자치를 위축시킨다며 법령에 위배되지 않으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더라도 빈틈이 없지는 않다. 지난달 13일 공포한 '경남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조례'는 상위법인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는 없는 내용을 담았다.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경남도 공식 기념일로 제정한 것이다. 이를 '상위 법률의 입법적 미비 상황'이라고 이른다.

주민에게 근거 법령보다 더 이익을 주면 상위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도 허용하되 주민 권리를 더 제한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은 법률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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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도민(주민) 삶에 미치는 영향은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당시 실제 폐업까지 이르게 한 것은 조례 개정이었다.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안으로 불리던 '경남도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에서 마산의료원은 그대로 두고 진주의료원을 삭제하는 단순한 조례 문구 조정이 그 엄청난 혼란의 정점 역할을 했다. 서부청사 건립도 조례 제정으로 논란의 끝점을 찍었다.

경남도의 학교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그대로 서민자녀교육지원 사업으로 돌리고 이 사업의 근거가 된 것도 조례였다. '경남도 서민자녀교육지원 조례'가 그것이다. 제정 당시 시민사회와 야권, 경남도청과 도의회 새누리당 의원 간 상당한 충돌을 겪었다.

9월 도의회 임시회에는 도교육청 학교급식 사무에 대해 경남도 감사를 의무화한 '경남도 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이 경남도 발의로 상정돼 일대 격돌이 예상된다. 학교 무상급식 지원금은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거나 내년부터 지원금액이 상당히 축소된 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도교육청은 경남도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하는 정치적 궁지에 몰리는 상황도 조례 개정으로 이뤄진다.

이 조례 개정은 박종훈 도교육감의 정치적 위기 초래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학교 무상급식 지원 중단 전 지원을 받던 도민 중 상당수가 여전히 지원을 못 받는 결과를 간접적으로 낳을 수 있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은 "10대 도의회 들어 의원 발의 건수는 늘었지만 조례 발의 전 공청회와 간담회를 열어 발의 전 그 효용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그다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최근 수도권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의원이 발의해도 사전 검증을 거쳐 조례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움직임이 많은데 도내 지방의회도 이런 흐름에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남도 공무원 이주지원비 지원 조례안'도 그 아쉬운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중요성에도 도의회나 시·군의회를 감시하는 지역 시민사회의 체계적인 모습은 여전히 부족하다. 도내 시민사회의 아쉬운 단면이다.

◇조례의 허와 실 = 물론 지방의회에서 통과된 조례 중에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른바 '허하고 실한' 조례라는 구분이 있다. 또한, 의원 입법 발의 건수를 올리고자 집행부(경남도의회로 보면 도청과 도교육청)가 발의해도 될 조례를 굳이 의원이 발의하는 예도 적지 않다.

이문성 서울시의회 운영위 입법조사관은 "건수 중심 조례 발의 문화를 최소화하고 실효성 있는 조례가 되려면 조례 발의 시 집행부 비용 추계서를 반드시 넣는 의원 내부 문화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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