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9) 통영 나폴리농원 길덕한 대표

편백나무 톱밥이 뿌려진 길을 맨발로 걷는다.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푹신하면서도 부드럽다. 공해와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돌보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듯싶다. 숲길을 걷다가 명상도 하고, 잔디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하거나 그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어도 참 좋겠다.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미륵산길 152 '편백나무 숲 속 나폴리농원'은 그런 곳이었다.

◇17∼18년생 나무에서 내뿜는 강력한 피톤치드 = "효소를 섞은 편백나무 톱밥을 숲길에 깔았습니다. 면역력 증강은 물론 아토피, 비염, 피로감 해소 등에 좋습니다. 강력한 피톤치드가 나와 모기 등 해충이 없습니다." 숲 해설가이자 농장 주인인 길덕한(55) 대표의 설명이다. 길 대표를 따라 편백나무 숲을 제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보통 편백나무 삼림욕장과는 다르다.

"키가 크고 오래된 편백나무에서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편백나무는 수령 13∼25년 때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이곳은 대부분 17∼18년생입니다. 모기가 없는 이유죠."

통영 '편백나무 숲 속 나폴리농원' 길덕한 대표가 편백나무 숲에서 편백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길 대표는 경기도 포천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는 포천에서 쌈밥을 파는 농장 겸 대형식당을 경영했다. 어떻게 통영에 오게 됐을까?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했는데 제주도는 물론 남해 바닷속을 훑고 다녔죠. 통영도 자주 왔었습니다. 스킨스쿠버 인연이죠."

길 대표는 바다도 좋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단다. 그러다가 37살 때인 1997년, 식당을 임대해주고 통영으로 왔다.

◇수표가 주렁주렁 달린 키위 농장 = 길 대표가 농장을 구입한 경위도 참 재미있었다. 농장에 오니 비싼 키위가 주렁주렁 달렸더란다. "보는 순간 속된 말로 눈이 뒤집혔죠. 눈앞에 10만 원짜리 수표가 매달려 있더군요. 바로 구입했죠. 그리곤 열심히 영농교육을 받았습니다. 수정하는 법, 가지치기 등 노력한 보람이 있었죠. 농사가 아주 잘 됐습니다."

그런데 팔려고 하니 문제가 생겼다. 키위를 사먹을 땐 개당 2000∼3000원을 줬는데 상자당 100개 정도 들어가니 족히 10만 원은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경매가격은 1만 몇천 원에 불과했다. "시스템을 몰랐던 거죠.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오려면 몇 단계 유통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겁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가족들 먹여 살릴 일이 걱정이었다. 통영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던 게 전자상거래였다.

"그때가 천리안 등으로 피시통신을 하던 마지막 시기입니다. 그런데 전자상거래를 하고자 홈페이지를 만들었더니 전국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농업인이 전자상거래로 농산물을 판다'고 뉴스에도 나오고 했죠. 성공이었습니다. 내 키위도 다 팔고, 동네 할머니 호박이니 유자까지 다 팔아줬습니다. 그러다 욕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길덕한 대표가 편백나무를 활용한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사업화하자" 솔깃한 제안, 신용불량자로 전락 = "한 도시민이 제안을 했습니다. 사업을 키워보자는 것이었죠. 솔깃했습니다. 금방 벼락부자가 되겠더라고요."

서울 홍릉 벤처타운에 사무실을 차렸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99년 주식회사 '농부가'를 만들어 2000년 1월 사업자등록을 하고 회사를 세웠다. 이번에도 농민이 만든 농산물 유통회사에 언론이 또 주목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전자상거래 결제시스템까지 갖췄다. 대박이었다. 오프라인 욕심도 생겼고, 일산에 농부가 이름으로 100평이 넘는 농수축임산물 매장을 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번에는 가맹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역시 처음엔 잘 됐죠. 서울, 창원 등 전국에 100여 개 매장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의 '사' 자도 모르는 허수아비 사장이 도장만 찍는 상황이니 점점 구멍이 생겼습니다." 농민에게서 '결제가 안 됐다'라는 항의전화가 오기 시작하더란다.

"아차 싶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빚만 잔뜩 늘어나 있었죠. 결국 내가 모두 떠안아 정리하고 통영으로 왔습니다. 그게 2004년입니다." 길 대표는 빚 갚느라 고향 부모님 땅 다 팔고, 통영 집과 농장도 저당잡혔다. 빚은 대부분 갚았지만 부부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벤처타운서 받은 플로피디스크 머리카락 쭈뼛 = 길 대표는 홍릉 벤처타운에서 일할 때 옆 사무실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아토피를 십몇 년 동안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연구개발비 대느라 친척들 자금까지 끌어들여 더는 돈이 나올 구멍이 없는 상황이 됐단다.

"하루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데 사업을 접는다며 자료가 너무 아깝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분이 연구했던 '히노키' 사진을 보여 주는데 우리 농장에 있는 편백나무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일본에만 있는 '히노키' 나무라고 우기더군요. 그가 떠나면서 플로피 디스크 수십 장을 건넸습니다. 나중에 이 사업을 해보라면서요."

길 대표는 통영으로 돌아왔으나 농장은 2∼3년 비워둔 탓에 풀밭으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 편백나무는 엄청 자라 있었다.

"우스운 일이죠. 하루는 플로피 디스켓을 열어봤는데 순간 머리가 쭈뼛거렸습니다. 그 사람이 연구했던 나무는 편백이었습니다. 그래도 몰라 산림과학원을 찾아갔습니다. '히노키가 편백나무'라는 답을 들었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자료에는 편백나무 기름짜는 방법 등이 들어 있었다. 길 대표도 그때 스트레스로 아토피 피부염이 생겼다. 기름을 짜 바르니 거짓말처럼 아토피가 가라앉았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과감히 키위나무를 베어냈습니다. 편백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고 '농부가'를 운영할 때 만든 홈페이지에 편백오일과 나뭇잎, 묘목 등을 올렸더니 잘 팔리더군요."

이때는 편백나무 약리작용이 막 알려지던 시기였다. 부부가 매일 묘목도 키워가며 오일을 짜 판매했다. 재료가 모두 농장에 있으니 품만 들이면 됐다. 다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한 번 방송을 탔다.

"주문이 엄청나게 몰리더군요. 재료가 동날 정도였습니다. 그게 2005∼2006년이었습니다."

처음엔 오일만 짜다가 2008년 비누를 생산했다. 이후 화장품은 물론이고 침구류까지 제품 영역을 넓혀 지금에 이르렀다.

◇연간 9억 매출에 순수익 2억 넘어 = 3000평 규모의 나폴리농원에서 길 대표가 올리는 수익은 얼마일까?

"매출이 제법 많습니다. 체험객이 하루 평균 100여 명 오는데 이들이 차 마시며 체험하는 데서 100만 원, 인터넷에서 평균 100만 원 정도 올라옵니다. 연간 8억∼9억 원쯤 되죠. 우리 부부와 직원 2명이 일하는데 인건비, 관리비 등 부대경비를 빼면 순수익은 2억쯤 됩니다."

체험객을 대상으로 몰래 모니터링을 한다는 길 대표는 체험객들이 후한 평가를 해 줘 기분이 좋단다. 하지만 체험객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힐링하도록 쉼터를 더 만들 계획이다. 그래서 조만간 유럽으로 벤치마킹을 떠난다고 했다.

"규모는 작지만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퀄리티 높은 휴식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은 다듬어가는 과정입니다. 단 한 명이 오더라도 만족하고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추천 이유>

◇통영시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전선숙 = 자연의 힘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편백나무 숲 속 나폴리농원' 길덕한 대표는 편백을 이용한 편백 화장품, 편백 차 등 제품 개발과 농촌교육농장으로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해 체험 프로그램 개발, 가공제품 개발, 다양한 마케팅 방식 등 끊임없는 배움과 노력이 오늘의 나폴리농원을 만든 성공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멈추지 않는 도전과 새로운 개발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 우리 농업과 농촌에 희망을 보여주는 작지만 강한 우수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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