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지역민에게 감동 준 이웃들 '희망의 스트라이크'던졌다

지난 6월 20일 NC와 한화의 경기가 열린 창원 마산구장. 경기 시작 전 한 소년이 마운드에 올랐다. 관중들 시선이 소년에게 집중됐다. 홈플레이트 포수석에는 소년이 닮고 싶어하는 손시헌이 자리 잡고 앉았다. 소년이 힘차게 던진 공은 손시헌의 미트에 정확히 쏙 들어갔다.

시구가 끝난 후 손시헌은 야구공에 직접 사인해주고, 자신의 목걸이도 소년에게 걸어줬다. "프로에서 꼭 다시 만나자"라는 손시헌의 육성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자, 순간 관중들은 환호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경남도민일보>가 6월 10일 자에 소개한 위주빈 군이다. 위 군은 뼈와 근육 등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육종암 판정을 받았으나,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병마를 이겨낸 주인공이다. 위 군의 사연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NC는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위 군을 응원하기 위해 이날 시구자로 초청했다.

육종암을 이겨낸 창원 사파초 야구부 위주빈 군(6월 20일)./NC 다이노스

◇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된 시구 = 시구는 언제부턴가 프로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야구에서 시구는 단순히 공 하나를 던지는 의미를 넘어선다. 경기 시작을 알리고 홈 팀 승리를 기원하는 숨은 뜻도 담겨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시구는 대통령이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인 전유물이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와 삼성 개막전에서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하기도 했다. 당시 경호원이 심판으로 분장해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된 시구는 지금도 많은 야구팬 사이에 회자하고 있다.

전국동계체전 4관왕을 차지한 거제 제산초 강민규 군(4월 1일). /NC 다이노스

1982년 탤런트 이경진 씨가 연예인 가운데 처음으로 마운드에 선 이후 시구자는 유독 연예인이 많아졌다. 화려한 볼거리를 원하는 팬과 주목받는 기회가 된다는 연예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야구장을 찾는 연예인이 급증했다.

특히 여자연예인 시구가 많아지면서 최근 들어서는 신성해야 할 시구가 신인들 얼굴 알리기, 이슈 만들기 산물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하이힐을 신고 그라운드에 선다든지, 지나치게 짧은 하의나 몸에 달라붙는 의상으로 민망한 모습을 연출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만 있으면 시구도 감동을 줄 수 있다 = NC는 창단 첫해부터 유명인이 점유해온 프로야구 시구 문화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구에도 의미와 스토리를 더하면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NC 다이노스 강남훈 사업본부장은 "시구자 선정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는 지역과 스토리"라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거나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선정 대상 1순위"라고 말했다.

그래서 NC의 시구·시타자로는 대부분 지역 주민이 등장한다.

시구자 중에는 지역신문에서 이슈화된 인물이 유독 많다. 전국동계체전 4관왕을 차지한 강민규 선수, SNS를 통해 화제가 된 김현주 순경, 자전거로 국토종주에 성공한 발달장애인 류청우·황동현 씨 등은 모두 지역신문에서 소개한 시구자다. 강 본부장은 "매일 아침 전해지는 지역신문이야말로 시구자 선정에 최고의 소재"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SNS를 통해 선행이 알려진 창원서부경찰서 김현주 순경(4월 5일). /NC 다이노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구가 팬들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기도 한다. 올 시즌 NC가 진행한 시구가 그렇다.

갑자기 찾아온 갑상선암으로 목소리를 잃은 비극을 이겨내고 다시 무대에 선 성악가 배재철 씨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고도 장애인과 청소년을 위한 선행을 베푼 김능곤 씨, 을지무공훈장 수훈자 가운데 도내 유일 생존자 남상이 씨 등이 마운드에 올라 감동과 희망을 선물해줬다.

영화 <더 테너>의 주인공이자 성대 신경마비를 극복한 성악가 배재철 씨가 지난 6월 2일 NC 다이노스 홈 경기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NC 다이노스

◇홍보 노린다면 전지현이라도 거절 = 그래서 창단 초기부터 NC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시구를 극도로 꺼렸다. 드문드문 자치단체장이나 연예인이 시구자로 나선 적은 있지만, 대부분 지역 인물로 채웠다.

그렇다고 NC가 무조건 이들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올 시즌 안상수 창원시장, 하창환 합천군수 등이 시구자로 나섰다. 안 시장은 '5만 서포터스'와 '신규 야구장 건립'이라는 선물을 들고 나타났고, 하 군수도 야로중 야구부 창단과 합천야구장 개장 등 야구 인프라 확충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에 초청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연예인도 종종 등장했다. 창단 후부터 시구자를 살펴보면 구단과 이름이 비슷한 가수 NC.A(엔씨아)가 시구자로 나선 적도 있고, 김해 출신 개그맨 양상국과 가수 이승철은 '다이노스 다이겨쓰'와 '우린 해낼 수 있다'는 응원가를 불러 초대됐다.

구단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구를 요청하는 연예인 수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NC 구단은 시구가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대부분 사양하고 있다. 강 본부장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시구를 홍보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톱스타라도 검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NC 다이노스 응원단 랠리다이노스의 이미경 전 팀장(8월 7일). /NC 다이노스
자전거 국토종주에 성공한 발달장애인 류청우 씨(7월 9일).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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