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남편 성근 씨 적극 지지 속 미희 씨 800㎞ 도보 여행

함안군 가야읍에 사는 박미희 씨는 56세 주부다. 지난 6~7월, '스페인 가톨릭 성지'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간 혼자 걸어서 여행했다.

평소 미희 씨는 딸들이 외국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부러워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책·사진에서 봤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걸으며 느껴보고 싶었고, 결국 길을 나섰다. 외국어가 되지 않았던 미희 씨는 몸으로 대신 말하며 꿋꿋이 800km를 누볐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수많은 외국인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미희 씨 남편 이성근(58) 씨는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저력이 있어요"라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성근 씨 지지가 없었다면 이번 여행도 없었을 것이다.

56세 박미희 씨는 결국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혼자 이뤘다.

"혼자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두렵겠어요? 그런데도 경험해 보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습니다. 아내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프랑스 파리까지는 저도 같이 있다가 그때부터 집사람 혼자 여행했는데요, 공항에 혼자 두고 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나 홀로 외국여행에 대한 막연함을 떠나, 미희 씨 역시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남편이 3년 전 간암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집안일을 거의 못해요. 냄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혼자 지내보겠다며 산티아고행을 적극적으로 밀어줬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집을 말끔히 정돈해 놓았더군요. 밥을 짓고 장엇국까지 데우고 있는 모습에 놀랐죠. 저도 그렇지만 남편 역시 홀로서기 연습을 잘한 것 같더군요. 40일이라는 시간이 서로에게 변화의 시간이 된 거죠."

부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일반적인 관념에 비추어 보면, 결혼한 지 31년 된 부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미희 씨는 3년 연애 끝에 결혼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미희 씨는 매일 이렇게 남편의 기타 연주를 듣는다. /남석형 기자

"친구랑 길을 가는데 이 남자가 따라오면서 이야기 좀 하자는 겁니다. 얼떨결에 다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눴는데요, 별로더라고요. 술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서 다시 안 만나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사람이 버스에서 갑자기 뛰쳐나오더군요. 우연히 저를 봤던 거죠. 그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없던 저에게 오기도 생겼나 봐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다 좋아하는데 당신만 왜 그러느냐'는 얘기도 하더군요."

한때 성근 씨 애를 태웠던 미희 씨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편안한 스타일이에요. 잔소리가 없어요. 내가 사람들 만나느라 늦게 들어와도 일절 뭐라고 안 해요. 그런 것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뭐든지 저를 지지해 줍니다. 이번 여행도 그래서 가능했던 거고요."

미희 씨는 여행 다녀온 이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좀 더 풍성한 여행길에 다시 오르기 위해서다. 행선지는 또 한 번 산티아고다.

"여행 다녀와서 한동안 우울했어요. 산티아고는 그만큼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순례길 코스가 여러 개 있는데요, 남편과 다른 길을 걷다가 한 곳에서 만나자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부부는 창원에 있다가 함안에서 산 지 5년 가까이 된다. 미희 씨는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다. 딸들은 서울·독일에 있어 함안 집에서는 둘만 지낸다. 부부 합창단 활동을 하는 등 늘 함께 시간을 보낸다. 성근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만졌다. 요즘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조금씩 친다. 그 덕을 보는 건 아내다.

성근 씨가 기타를 들고 연주를 시작하자 미희 씨가 곁으로 가서 행복한 표정으로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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