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4) 밀양 밀성 손씨 고가촌

밀양에서 고택과 마주했다. 우연이었다.

한낮 뙤약볕 도로 위. 밀양시립박물관에서 영남루를 찾아 나섰다. 초행길이라 버스나 택시가 자주 다니는 길로 나가야 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숨 한번 내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봇대에 떡하니 달린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밀양향교와 밀양손씨고가촌이 200m 남았다는 알림판이다.

기와지붕이 여러 채다. 1층짜리 현대식 건물에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하는 가게가 즐비한 도로 맞은편 풍경과 사뭇 다르다.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자면 얼마나 좋을까.'

밀양손씨고가촌은 아담했다. 기와집 몇 채를 지나치니 길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천천히 다시 걸어봤다. 기와가 얹어진 담은 정갈했다. 담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성인이 발뒤꿈치를 살짝 들면 마당을 볼 수 있다.

밀양손씨 고가촌.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된 고택 모습. /이미지 기자

'밀양 교동 밀성 손씨 고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1·184·399호로 지정됐다. 161호로 지정된 고가는 밀성 손씨 고택 가운데 가장 크다. 99칸 규모로 만석꾼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17세기 숙종 때 처음 지어졌고 정원과 마당이 넓어 택지가 3305㎡(1000평)가 넘는다고 한다.

이 집은 현재 한정식 가게로 한옥 한편을 내어주고 있었다. 밀양 손씨 11대손인 손중배 씨가 고가를 관리하는데 한정식 가게를 운영한다.

솟을대문(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이라 부르는 높은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나무다. 대들보와 서까래, 나무 창문, 쪽문들.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결 대신 투박하고 흙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다.

나물을 무치는 듯했다. 고소한 향이 더운 공기에 머물러 있다. 한 아주머니는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는다. 물 한잔 내어준다. 그러고는 안채는 볼 수 없다고 알린다. 주인 할머니가 꺼린다고. 살짝 문을 닫는다.

문화재자료 설명에 따르면 동편에 ㄱ자로 자리 잡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큰 사랑채가 있고 그 맞은편 중문을 지나면 작은 사랑채가 있다고 한다. 넓은 사랑 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서면 중문을 지나 넓은 내정 북쪽에 7칸 2열의 정침이 있다는데 보지 못해 아쉽다.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 /이미지 기자

안채와 사랑채가 확연히 구분된 듯했다. 담으로 경계가 확실했다. 선뜻 내보이지 않았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했고 버선발 모양을 쏙 빼닮은 지붕 끝에 풍경은 없었다.

한정식집 후방에 작은 구릉을 사이에 두고 밀양향교가 있다. 밀양향교에 오르면 고가를 뒤로 아동산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 고가촌을 걸었다. 대문이 자물쇠로 잠겨있는 집이 더러 있다. 나무 사이로 벌어진 틈새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빨간 고추가 마루에 말려져 있어 드나드는 이가 있겠다 싶지만 고장 나 보이는 텔레비전과 텅 비어 있는 개집을 보니 누가 사나 싶다.

한 아주머니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더운데 물 한잔 먹고 가라며 손짓한다. 고가에 세 들어 산다고 했다. 밀양에 시집온 할머니 3명이 고가촌에 남았는데 정정하시단다.

마당은 어지러웠다. 세간이 밖으로 튀어나와 복잡하다. 감나무와 옥수수가 심긴 작은 밭도 잡초와 뒤섞여 있다. 혼자 산다는 아주머니 집은 단출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려 있었다. 옛날 집이라 천장이 낮았지만 선풍기가 필요 없을 만큼 시원했다.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묻던 아주머니는 일정이 바빠 일어서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서운해했다.

자꾸만 발뒤꿈치를 들었다. 만석꾼 집도 도시형 한옥으로 지어졌다는 다른 고가도 속시원히 볼 수 없어서였다.

밀양 손씨가 대대로 살았다는 오래된 마을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홀로 지내는 아주머니가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풀듯 고가촌 속을 몰래 들여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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