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유기준 장관 원론적 말만 하고 어민들 대면 안 하고 그냥 떠나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19일 오전 9시 30분 김포공항을 출발해 낮 12시 40분 거제 적조 방제 현장에 도착했다. 양식 어류 첫 집단 폐사에 이어 거제와 남해에서 2차 집단 폐사가 일어나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폐사가 진행된 남해와 거제는 물론 통영 산양읍 오비도 서쪽바다 위로 수 척의 어선이 짙은 황토를 쏟아내며 적조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날 적조 폐사 현장을 찾은 유 장관이 바른 선크림이 요란했는데 과장하면 하얀 가면 수준이었다. 장관의 얼굴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던 적조 현장 어민 얼굴은 검고 말라 있었다.

"어제 한잔했고 잠을 못 잤다"고 말한 어민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황토를 뿌리지만 적조가 닥치면 몇 년 키운 것들은 다 죽을 수 있습니다. 방류요? 하고 싶지요. 만 원짜리 돔을 천 원 받고 방류를 해요? 그러고 싶은데, 하지만 끝까지 살리려고…."

지난 19일 오후 적조 경보가 내려진 거제시 해역에서 어민들이 황토를 살포하는 등 방제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합뉴스

50대인 그는 같은 어민들과 19도짜리 녹색 플라스틱병에 든 소주를 따라 마셨고, 마신 종이컵을 휙 바다 위로 던져버렸다. 피곤으로 그는 반쯤 입이 벌어진 상태였다.

역시 그 시간, 유 장관은 어민들이 없는 황토 살포 바지선 위에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포즈를 취했다. 30분쯤 바지선 위에 있던 그는 배로 이동해 통영 적조 현장을 둘러본 다음 헬기를 타고 슬픔의 바다, 세월호 인양 현장 전남 팽목항으로 떠났다.

유 장관이 떠났을 시점, 일몰로 유명한 산양읍 달아공원 아래 중화마을 앞바다에는 어선과 관공선이 몰렸다. 적조가 나타나면 관공선과 어선들이 황토를 뿌리거나 전쟁 수준의 물살을 만들며 해역을 휘돌다 적조가 있는 다른 곳으로 다시 가고 적조가 오면 또다시 오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유 장관 방문 전날인 18일 오전 10시 30분, 통영시 인평동 부두에서 출항한 행정선은 고성군 자란만 쪽으로 빠져나와 풍화반도를 돌았고 오비도로 갔다. 산양읍 연안은 통영 가두리양식장 60%가 집중된 곳이고, 행정선이 도착한 이 해역은 섬과 육지로 둘러싸인 천혜의 안전처지만 2년 전 엄청난 적조 피해 후 지난해에는 첫 적조 떼죽음이 일어난 현장이었다.

행정선이 오비도 내만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어선 6척이 급회전하는 등 하나같이 한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적조를 쫓고자 적조 위를 달리며 거칠게 물살을 만들고 있었다.

척당 거의 매일 면세유 한 드럼 정도를 쓰면서 적조와 대치하는 이 장면은 곡예 같고 볼 만한 구경거리였지만 어민으로서는 매년 되풀이하는 '돌아버릴 것 같은' 발버둥이었다.

양식장 인근 육지 선착장에는 어딜 가나 뿌리고 또 뿌려야 할 황토가 어김없이 쌓여 있었다.

임정택 씨는 2013년 최악의 적조 당시 이곳에서 10억 원 정도 피해를 봤고 지난해 또다시 적조 피해를 본 어민이었다.

올해 첫 출현 예보와 함께 그는 또 적조에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목재 가두리에서 특수재질인 폴리에틸렌(PE) 가두리로 바꾼 그는 지난 6일 어민 최초로 적조가 없는 해역으로 양식장을 옮겼다. 하지만 임 씨처럼 모두 가두리를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옮겼으면 하지만 단단한 재질의 PE가 아닌 옮기다 부서질 가능성이 큰 기존 목재 가두리 운영 어민이 아직 70%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적조 바다에서 어민들이 전전긍긍하던 이때, 같은 바다에 있던 유 장관은 "장기 대책" "보상" "연례행사" 등 정부의 연례적인 말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장을 찾은 그의 격려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일정이 구설에 올랐다. 적조 공포의 날과 국민적 관심이 쏠린 세월호 인양 현장 확인을 같은 날 잡은 그는, 어민이 아닌 주로 공무원들과 있다가 황토 대포를 쏘는 장면을 연출했고, 일정표대로라면 팽목항에서도 30분 정도를 머물다 급하게 여수공항을 통해 다시 서울로 갔다. 이렇게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 2가지를 당일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거제-통영-팽목-여수로 배를 타거나 날아다니며 주마간산(走馬看山) 했다는 지적이다.

한 어민은 유 장관에게 보상 문제인 "죽이지 않고 살려서 방류하는 방법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고, 또 다른 어민은 "가두리양식장을 이동시킬 수 있는 피난처 확대 지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관이 떠난 바다는 바닷물의 움직임이 덜한 소조기에 접어들었다. 대조기에 유입된 적조생물이 정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 우려가 커질 것이란 말이 나오는 시점이다.

2013년, 적조 대재앙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통영에 와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한 지 꽤 됐지만 더디기만 하다.

정부 대책도 더딘 이때, 통영·거제 바다 위 선크림을 바를 여유도 없는 어민들은 검게 탄 얼굴로 적조 위를 떠돌고 있다. 나라도 못 세우는 대책이니 어민들은 그저 황토라도 뿌리는 것이며 "수온이 18도로 떨어지면 소멸하는 적조라서, 비슷한 19도짜리 소주를 마신다"는 어민은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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