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제작 영화 <사다리>재편집 작업을 끝내고

올해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세 번째 장편영화 재편집에 들어갔어요. 매일 눈을 뜨면 한숨에 젖은 세수를 한 뒤, 담담히 30인치 모니터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모니터 속 등장인물들은 입김을 내뿜으며, 목도리를 칭칭 감은 겨울에 살고 있죠. 2015년 여름은 아쉽게도 저와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수험생처럼 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 사는 제가, 오늘(6일) 새벽에, 예쁜 추억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진짜 고3 수험생과 함께요.

영화사 소금이 진해에 자리를 잡은 지 5년 차가 되다 보니 영화제작을 배우려는 청소년들이 전국에서 하나둘씩 소금을 찾기 시작했죠. 해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에 소금은 이들에게 무조건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가르쳐 주고 나서 해보라고 하지 않고, 해 본 뒤 가르쳐 주었어요. 틀리든 맞든 일단 해보라는 거죠. 뭐가 뭔지 몰라도 일단은 해 보고 틀려보아야, 진정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친구들이 1년 만에 작품을 탄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소금의 지원을 받아 단편영화, 러닝타임 16분 21초 <사다리> 라는 영화를 제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 영화제에 러닝타임을 10분으로 줄여 제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어제저녁, 서울에서 입시 학원에 다니는 감독 지망생 진슬이로부터 막막해 하는 연락을 받았어요. 부피를 줄이되 내용을 줄이지 않아야 하는 일이죠. 제게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잘라내지 않으면 러닝타임이 300분(5시간)이 넘던 첫 번째 장편영화 <여좌동 이중하>가 러닝타임이 134분(2시간 14분)이 되기까지 그 깜깜하고 현기증 나던 시간이 지금의 제가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지난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진슬이와 SNS로 의견을 나누어가며 결국 16분 21초인 영화를 9분 59초로 만들어 냈어요. 그리고 무사히 영화제 마감 시간에 맞춰 제출을 했답니다. 참 긴박한 새벽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들기 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도 본질은 그대로이되 군더더기를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새벽에, 진슬이와 예쁜 추억을 만들며 저는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기념으로 찰칵! 이것이 행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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