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8) 함안군 연미식품 정길순 대표

족히 1m가 넘을 듯한 깊이가 남다른 무쇠 솥 주위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8월 한복판인데 열기로 가득한 무쇠 솥을 들여다보며 작업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함안군 칠서면 계룡로에서 연미식품을 운영하며 '칠백연'이란 상표로 백련 가공품을 생산하는 정길순(61) 대표와 딸 표정숙(36) 씨다.

◇아홉 번 덖은 연잎차, 순백의 꽃잎으로 만든 연꽃차 = "아침 일찍 연잎을 채취해 깨끗이 씻고 썰어 지금은 세 번째 김을 모아서 익히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처음 덖을 때가 중요한데요, 잎을 찌는 게 아니라 가마솥 열기를 연잎에 모아서 비비는 이 과정을 세 번 거칩니다. 이후 여섯 번 덖는 과정을 거쳐 건조기에 두세 시간 말려 포장합니다. 이 과정이 하루 만에 다 끝나는데 저녁 8~9시쯤 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정 대표가 순백의 연꽃잎 차를 우려내며 잎차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다. 연잎이 두꺼운데다 한창 더울 때인 7∼8월이 수확 철이라 다른 덖음차 만드는 것보다 힘들 수밖에 없단다. 정 대표가 내놓은 꽃잎차의 은은한 향이 입안을 휘돈다. 그런데 마시는 것은 꽃잎차인데 밖에서 본 것은 연잎차다. 연꽃차는 또 어떻게 만들까?

"지금은 연꽃이 피는 시기가 지났습니다. 그래서 잎을 채취해 가공하는 것이고요, 연꽃은 3일 정도 피는데 첫날 채취해 바로 압축 팩에 넣어 급랭시켜 저장합니다. 차를 마실 땐 꽃잎을 녹여 따뜻한 물에 넣어 우려내면 됩니다."

정 대표 남편 표대수(63) 씨는 칠원면과 인근 창녕군 남지읍 약 1만 평의 논에서 연을 재배한다. 연 농사는 표 씨가 짓고 있고, 정 대표는 딸 정숙 씨와 함께 백련 800여 평에서 꽃과 잎으로 가공상품을 만든다. 가족의 수익은 연간 1억 원 정도다. 이 중 정 대표는 연을 가공해 2000만 원 정도 수익을 낸다. 하지만 세 사람 인건비를 빼면 순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단다.

"사실 백련에서 꽃을 채취하거나 잎차를 만들어도 양이 적습니다. 연잎 10㎏으로 잎차 750g 정도 만듭니다. 제품종류는 연근차, 잎차, 꽃잎차를 비롯해 연근가루, 연잎가루, 국수, 천연비누 등이 있는데 아직 소비가 많은 것도 아니고 판로도 다양하지 않아 수익이 많이 안 납니다."

◇15년 객지생활, 다시 돌아온 연 농사 = 의령이 고향인 정 대표는 36년 전인 1979년 결혼했다. 당시 시아버지가 칠서에서 농사를 지어 연근을 일본에 수출했다고 한다. 10년 정도 시부모와 살았던 정 대표는 처음 시아버지가 농사짓는 연밭에 점심이나 새참을 해 나르던 정도였다고 했다.

"시댁에서 10년을 살았는데 88년 올림픽이 열린 그해 우연히 창원 용지동에서 횟집을 열게 됐습니다. 1년 가까이 운영하다 이후 칠서면 천계에서 다시 횟집을 차렸습니다. 한 번도 회를 떠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그게 내 직업이 되니 또 회를 떠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는 실력이 되더라고요."

연밭을 벗어나 횟집으로 외유(?) 했던 정 대표는 이후 남지에서 돼지불고기집, 밥집, 추어탕, 포장마차 등 다양한 일을 했단다. 그리곤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인근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상가부지에 투자했다가 땅도, 번 돈도 다 날렸다. 이후 표 씨는 연로한 아버지를 모시고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고, 근처에서 연 농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정 대표가 그렇게 외유로 보낸 기간이 15년이었다.

◇가업 이어받은 며느리, 가공품 생산으로 영역 확장 = 시아버지가 연 농사를 지어 일본에 수출할 정도였으니 남편 표 씨도 재배기술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전국 곳곳에서 연밭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붐이 일면서 표 씨는 전국으로 불려다니는 인기를 누렸단다. 연꽃축제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 양수리는 물론 함양에서도 표 씨의 연 재배법이 필요했다.

정길순 대표가 몇 차례 덖은 연잎을 그늘에서 식히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우리 아저씨 연 관리법이 뛰어났죠. 경기도 양수리에도 아저씨가 연을 옮겨 심어줬는데 나도 아저씨 따라 한 달 정도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함안 연테마파크도 관리가 안 돼 꽃이 잘 안 피었는데 올해 남편이 관리하고 나서 많이 피었습니다." 정 대표가 은근히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 그가 어떻게 가공식품을 만들었을까?

그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정 대표의 찐 연근을 맛본 군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제품 생산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이 아이템으로 소규모 창업사업 신청을 해 2009년 국비 등 1억 원을 지원받아 그해 9월 약 200㎡에 건물을 지어 '연으로(蓮) 맛(味)을 낸다'라는 의미의 연미식품을 열었다.

"하지만 연을 쪄서 만드는 상품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죠. 연구와 도농업기술원 등 기술지도로 지금의 가공상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함안에서 700년 전 고려시대 때 연 씨를 발견해 아라홍련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함안군이 연의 본고장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칠백연'이라는 브랜드명을 정하고 상표권도 출원했죠."

◇시작은 미약하나…모녀가 키워가는 '칠백연' = "사실 이 일은 푼돈이 들어오는 사업입니다. 연잎만 보더라도 잎을 채취해 보내려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고 스티로폼에 아이스팩 등 갖춰야 할 것도 많습니다. 더구나 잎을 따 냉장고에 보관한다 해도 1주일 안에 처분해야 해 재미있는 사업은 아닙니다. 남의 일 하기보다는 낫기에 딸과 둘이서 힘닿는 데까지 하는 것이죠."

비록 몸은 힘들고 수익은 많지 않지만 정 대표는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다. 다행히 정숙 씨가 열정적으로 뒤를 받쳐주고 있다. 정숙 씨가 블로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칠백연을 알리고 또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인터넷을 통한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입소문을 통해 인근을 지나가다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찾고 있다.

"옛날에는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내가 받으러 다녔는데 요즘은 딸에게 맡깁니다. 부모 욕심이지만 딸이 이 일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딸이 교육이나 판매 등 매사에 주도적으로 나서 여간 든든한 게 아닙니다.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줘야지요." 딸이라기보다 동업자와 같은 정숙 씨를 바라보는 정 대표의 시선이 그윽하다.

<추천 이유>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농산물가공전문가 이영미 = 꽃천국 연미식품 정길순 대표는 함안 칠서, 창녕 남지 등에서 약 1만 평의 연 농사를 지으면서 연 관련 가공품을 개발해 활발한 소득 활동을 하는 강소농입니다.

식용 가능한 흰색 꽃이 피는 금가람 백련 꽃잎을 엄선해 무쇠가마솥 구증구포의 수제로 만드는 연잎차와 연근차는 맛이 구수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입니다. 부부가 경영하던 연 농사를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큰딸이 합류해 마케팅을 맡고 영어전공을 살려 다문화 가족 체험을 운영,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함안연꽃테마파크' 조성 때 연 재배 기술과 관리 노하우를 제공하는 등 명실공히 연 재배와 가공품 개발의 일인자인 강소농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