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논에 미늘띠기 아지매 혼자서 써레질하고 있다. 땡볕 무논 위로 미늘띠기 아지매 등허리가 섬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고, 똥뫼산에서는 소쩍새가 '니기미니기미' 울어댄다. 모판에 쪄놓은 모들은 새파랗게 차오르고….

일찍 고향을 떠났던 아버지는 농사에 서툴렀다.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농사는 모든 게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

벼농사는 볍씨를 골라 모판을 찌는 것에서 벼를 베고 말리고 매상을 할 때까지, 과실나무는 가지를 치는 것에서 솎아내는 것까지. 농사는 꼬박이 1년이 지나야 겨우 한 바퀴 학습이 되는 것이었다. 그게 여러 해 동안 반복되면서 터득하는 것이다. 터득이란 게 알고 보면 때가 되면 미리 준비하고 물난리나 가뭄 등 자연재해에 적절히 대처를 하는 것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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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 직전 벼 모판./권영란 기자

일곱 마지기 논에다 직접 벼농사를 시작한 첫해 그 가을, 아버지의 얼굴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어느새 검게 그을린 얼굴에 그득했던 웃음, 그리고 평소보다 달뜬 목소리. 가을 들녘 황금물결을 이루던 벼이삭들이 한꺼번에 출렁이는 듯한 웃음이었다.

"제초제 뿌리지 마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지가 알아서 큰다. 비료 많이 뿌려봤자 태풍 오면 벼 쓰러진다. 비료 뿌리지 마라…."

몇 해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깨친 것이었다. 아버지의 논에서는 9월 태풍이 와도 벼가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추석을 앞두고 차례 준비도 못 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논에 쓰러진 벼를 묶어 일으켜 세운다고 난리를 피울 때 아버지의 논은 평온하고 또 평화로웠다. 쓰러진 벼는 없었다. 비료를 많이 주어 벼들이 웃자란 것도 아니고 낟알을 빼곡히 단 것도 아니니 벼들은 지 몸 지가 잘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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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레질하는 논. 물을 채운 논은 이렇게 써레질을 하고 표면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권영란 기자

하지만 아버지는 다섯 해를 넘기고는 벼농사를 접었다. 기력은 점차 쇠해지고 배울 때는 재미있었지만 기실 농사는 힘들었고 수매가는 형편없었는지도. 그렇게 한 두어 해를 묵혔는데 거기에다 면에서는 휴경지 신청을 하면 오히려 마지기당 얼마씩을 준다고 하고 논에는 벼 외에 딴 것은 심어도 된다하고…. 몇 해 지나 논은 밭이 되었고 매실, 모과, 녹차 등 온갖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게 됐다. 아버지의 땅은 1400평의 농원이 됐다. 일곱 마지기의 논은 사라졌다.

"2015년 1월 1일부터 다른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쌀도 관세화(tariffication) 됩니다. 지금까지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쌀을 수입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정해진 관세(513%)를 납부하면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됩니다."

농민들은 생계가 되지 않는 물론 정부마저도 보장해주지 않는 논농사를 접은 지 오래다. 논농사로는 살길이 없으니까. 올해 1월 1일부터 쌀 관세화가 시행되고 있다. 사실상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 것이다. 농촌에서는 논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금 아버지의 땅처럼 용도를 달리하거나 아예 묵혀놓은 휴경지가 늘고 있다. 논은 이미 주인을 잃었다. 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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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 하류의 강변 논./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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