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사천읍 두랑6리 원두마을 정운실 이장

사천지역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천시이·통장협의회 회장, 사천읍이·통장협의회 회장 등 화려한 경력의 베테랑 이장이 있다.

주인공은 사천읍 두랑6리 원두마을 정운실(65) 이장이다. 정 이장이 지난 2005년부터 11년째 이장을 맡은 원두마을은 현재 50여 가구가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정 씨 집성촌이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 마을주민이 친인척으로 형성돼 있는데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 집 송아지가 기침하는지도 알 정도로 마을주민들의 사이가 가깝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사천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토박이 정 이장은 군대를 다녀온 뒤 잠시 마을을 떠났다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40살의 나이에 마을로 돌아왔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였다.

원두마을 식수문제 해결은 사천읍사무소와 사천시청을 제 집 드나들 듯하던 정운실 이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처음 마을주민들이 이장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승낙하지 않았다. 아니 승낙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이장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정 이장의 생각이었다.

더구나 당시 원목가구 판매 사업을 하던 그로서는 사업가와 마을이장, 두 가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두 달 가까이 버텼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번 해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결국 이장직을 맡게 됐다.

신입 이장이자 초보 이장인 만큼 마을주민을 위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부딪혔다. 토박이인 만큼 마을 구석구석 가가호호 모르는 곳이 없고 그만큼 마을주민의 어려움을 잘 알아 홀로 사는 노인 등 어려운 집은 먼저 찾아가 도와줬다.

마을 어디에서든 정 이장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정적이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 해결해 주는 슈퍼맨인 셈이다. 실제 그가 이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름, 마을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그동안 관정으로 식수를 해결했는데 가뭄으로 식수공급에 문제가 생긴 것.

지난 2013년 정촌뿌리산단 조성 반대 회견을 하고 있는 정운실 이장(맨 오른쪽)./경남도민일보 DB

하루에 한두 번 소방차량으로 식수를 공급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정 이장은 마을주민들의 식수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상수도를 끌어들이는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65만 원 정도 드는 설치비용에 발목이 잡혔다. 원두마을은 특산물을 재배하는 마을도 아니고 비옥한 토지가 많은 마을도 아니다. 그럭저럭 하루 끼니를 때우는 농민들로서는 엄두가 안 나는 큰 금액이었다.

정 이장은 사천읍사무소와 사천시청을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담당 공무원을 만나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결국 마을주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꿈은 이뤄졌다. 다른 마을사람들의 절반 수준으로 집집마다 상수도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주민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켜주고, 화재로 집이 홀라당 타버린 가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일 등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이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 이장은 집에서는 하숙생이 돼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잠잘 때 집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가끔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지인들의 빚보증 때문에 사업까지 접어야 한 것도 모자라 농사일까지 아내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올해는 지난 2008년부터 맡았던 사천시 이·통장협의회 회장을 그만두면서 집안일에 신경을 조금 쓴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정 이장은 요즘도 마을과 가까운 진주 정촌면에 조성 중인 뿌리산단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사천시민연대 박종순 대표와 함께 뿌리산단 조성사업을 막고자 사천시청, 진주시청, 경남도청을 방문하는 등 발품을 판다. 그리고 뿌리산단 조성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열변을 토하는 등 각종 노력을 하고 있다.

정촌뿌리산단이 서부경남 식수원인 진양호 상수원 보호구역과 8㎞ 이내에 있는데다 6개시·군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사천정수장과는 900m 이내에 자리 잡아 산업단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원수 수질오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 이장의 주장이다.

특히 뿌리산업 중 비교적 오염이 적은 3개 업종만 유치하겠다는 진주시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정 이장은 "진주 뿌리산단에서 발생한 중금속 날림먼지가 인근 사천정수장과 진양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안심하고 물을 마시는 길은 진주 뿌리산단 조성사업이 철회되는 것뿐"이라며 "마을이장으로서 마을주민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물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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