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와 함께한 40년, 무엇을 요구하든 '쾅쾅'…아버지 이어 2대째 대장장이 일

정말 더운 요즘이다. 그런데 이 불볕더위에도 쇠를 달구는 남자가 있다. 김씨공방(함안군 칠원면 예곡리 832-41)의 김정식(51) 씨다. 지금은 석탄이나 숯 대신 가스를 쓰긴 하지만, 1년 내내 불을 피우고 쇠를 달구는 김 씨의 얼굴엔 땀이 한가득하다. 그는 대장장이다.

◇사라지는 대장장이 = 김 씨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대장장이다. 대장간 일은 어렸을 때부터 늘 봐왔던 일이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보던 일을 아버지가 된 그도 이어가고 있다. 공방은 마산에 있다가 5개월 전에 함안으로 옮겼다. 사촌 동생인 강진섭(36) 씨도 함께한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릴 적 시골에 나무 그늘 아래서 모루를 두고, 망치소리…. 지금 생각하면 운치도 있고. 원래는 저도 이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힘든 일이잖아요. 몇 년 전 한창 웰빙 열풍이 불던 때, 통나무·목조주택을 만들기도 했어요. 꽤 실력이 있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기도 했죠. 그런데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능이 남아 있나 봐요. 다시 망치를 잡았네요. 대장장이 경력은 40년 가까이 됩니다."

김정식 씨가 벌겋게 달궈진 쇠를 망치로 제련하고 있다.

김 씨가 어릴 때만 해도 마을마다 대장간이 하나씩은 있었단다. 김 씨의 부모님도 칼·농기계 등을 만들어 팔았다. 저렴한 중국산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대장간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전국구, 자부심 = 김 씨는 칼을 전문적으로 만든다. 전부 주문 제작만을 한다. 한 달에 30개 정도를 제작한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종류에 따라 15만 원가량에서 50만 원이지만 천차만별이다. 원하는 크기와 모양을 그려주면 그대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찾는 이들은 지역이 따로 없다. 서울·경기권에서 주문하는 이들이 많고 바다 건너 호주에서도 찾는다고 했다.

"제 칼을 쓰는 사람들은 전부 전문가죠. 칼을 많이 쓰는 사람들. 주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죠. 요리하는 사람들은 칼 욕심이 있어요. 가격은 재료비 빼고 나면 정말 남는 것이 없어요. 지금은 홍보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랑 같은 수준의 독일·일본 칼들은 150만~300만 원 정도입니다."

김 씨가 만드는 칼은 소위 '찍어내는' 칼이 아니다. 전부 직접 제련한다. 쇠를 녹여서 단접, 접쇠한다. 김 씨가 자신 있게 말하는 칼은 '다마스커스'다. 다마스커스는 칼날에 물결 모양이 특징이다.

"이 기술은 정말 흔치 않아요. 단조를 오랜 시간 쳐야 하고 연마도 힘듭니다. 오롯이 한 개를 만드는 데만 3~5일이 걸립니다. 휘어지지만 절대 깨지지 않고요. 한 번 써보신 이들은 계속 저를 찾네요."

김정식 씨가 자신이 만든 칼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 씨는 일본의 칼이 유명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본래 그 기술들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한국의 대장장이들의 기술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술들이 잊혔지만 일본에서는 이어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 씨는 자신의 기술을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극 가르쳐 줄 마음이란다. 경쟁업체라도 환영이란다.

◇내 꿈은 기술 전파 = 우선 김 씨는 한국에도 이런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목표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인터넷카페(http://cafe.naver.com/kimckal )를 만들어 알리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칼을 만들지 못한다며 믿지 않는 댓글도 종종 눈에 띈단다.

"저는 한국에도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요. 이어받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전수해주고 싶고요. 품질이 외국 것들에 절대 뒤처지지 않거든요. 사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고생한 걸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죠. 자신들이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었거든. 그런데 조금만 멀리 보면 작업환경, 고객 등 모든 걸 갖춰놨잖아요. 확실한 길만 있다면 이어받는 것도 나쁘지 않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은 없다. 김 씨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과 신뢰이고, 자신의 칼에 대한 자부심이다. "누군가 제가 만든 칼을 쓰고 인정해줄 때 정말 기쁩니다. 보람도 느끼고요. 앞으로 딱 10년만 이 일을 더 하고 나중엔 진짜 '작품' 활동을 하고 싶네요."

서글서글하게 웃는 김 씨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뿜어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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