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립으로 가는 길] (4)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점심식사가 끝난 뒤 프라이부르크 이노베이션아카데미 한스 요르그 슈반데 대표의 식기들은 혀로 핥은 듯 깨끗했습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재생에너지의 세계적 조류' 취재기자들 대부분이 음식을 남긴 것과 대조적이었죠.

독일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와 그 속의 생태주거단지 보봉 현장을 안내한 그는 "에너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절약"이라고 했습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수요가 준다"는 거죠. 음식을 남기는 게 뭐 그리 에너지 소비와 상관이 있느냐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를 옮기고 재활용하고 소각해서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들지 않겠습니까.

자전거 전용도로에 자전거 고속도로까지 만든 자전거 도시, 1969년 이후 시내버스와 노면전차 트램, 기차 등 대중교통 중심의 통합형 교통시스템을 정착시킨 독일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별칭은 '태양의 도시'입니다. 그만큼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곳입니다.

그 속에서도 대표적인 보봉 주거단지는 인구 5500명에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뛰어놀아도 아무런 문제 없는 마을, 겨울 난방은 물론 여름 냉방까지 태양광 조절과 단열 등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인 태양의 마을이었습니다.

보봉마을 내 태양열주택 사무실 내부 단열창 원리를 설명 중인 마이어(왼쪽) 대표.

◇프라이부르크 대중교통

공동취재단이 지난 7월 10일 오전 10시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슈반데 대표를 만난 곳은 프라이부르크 중앙역 근처였습니다. 이곳이 기차역인 데다 도심 노면전차인 트램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연결지점이고, 자전거전용도로는 물론 자전거고속도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같았죠.

슈반데 대표는 프라이부르크에 대중교통 시스템이 정비되고 자전거 이용률이 다른 곳보다 높아진 최초 계기가 1970년대 인근 '빌'지역 원자력발전소 설치 반대운동이라고 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출발은 언제나 '탈핵 탈원전'이라는 거죠.

독일 프라이부르크 도심은 자전거와 버스, 노면전차 등 철저히 대중교통 중심으로 에너지를 절약한다. /공동취재단

1년 530유로(67만 원 정도) 하는 티켓 하나 사면 프라이부르크는 물론 인근 3개 시·군지역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슈반데 대표의 한 마디로 이 도시의 대중교통 중심 정책을 실감했습니다.

차량용 도로 위에 설치된 자전거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슈반데 대표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조심하세요.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지 마세요!"

프라이부르크시가 자전거고속도로를 도입한 의도는 '자동차만큼 빠른 자전거'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전거 수요가 늘 수밖에 없습니다. 자전거고속도로 가까이 몇 층 건물로 된 자전거 전용 주차장까지 보였죠.

2015년 현재 프라이부르크 교통수단 비율은 대중교통 50%, 자전거 35%, 나머지 15%가 개인차량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취재 때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 만난 도시의 공통점은 우리나라 가을처럼 '청명'했다는 것입니다. 시골은 물론이었고요.

공동취재단을 안내하고 통역한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과 환경정책연구소 염광희(40) 연구원은 그 이유를 도심지 대중교통 정책에서 찾기도 했죠. 개인용 차량을 가능한 한 차단하는 교통정책으로 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 매연 배출이 그만큼 적다는 것입니다.

◇보봉 가는 길

독일의 환경수도 내에서도 대표적인 친환경 주거단지는 인구 5500명의 보봉과 1만 1000명의 리젤펠트입니다.

그중 슈반데 대표가 안내한 곳은 보봉으로 입구부터 특이했습니다. 이후 주차장으로 계획된 미개발 공간에 주민들이 텃밭을 가꾸고, 그 옆 나무넝쿨로 지은 아담한 공간에서 보봉마을 개요를 설명했습니다.

주민과 행정기관이 수년간 논의와 진통 끝에 확정된 마을조성 콘셉트는 '교통을 고려한 도심 주거단지 조성'이었다는군요.

밋밋한 표현의 콘셉트이지만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워낙 대중교통과 보행자를 중심으로 두다 보니 마을 안 도로 곳곳에는 '5~7㎞로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표시가 있었습니다. 도로 위에 아이들이 뛰어놀다 그린 그림들이 보일 정도였죠. 그만큼 차량이 적다는 거죠.

차량 속도를 시속 5~7㎞로 제한하는 보봉마을 도로 그림.

슈반데 씨가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독일의 인구 100명당 등록차량 수는 66대, 프라이부르크는 33.7대, 보봉은 17.4대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급하게 찾은 통계가 인구 5100만 명인 한국이 지난해 10월 말 차량 수 2000만 대를 돌파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보봉의 도시개발 콘셉트는 '태양의 도시'라는 표현으로 압축됩니다.

태양열과 태양광을 저장해 겨울 난방을 해결합니다. 여기에 단열과 공기조화, 열병합발전 연료공급 등을 뼈대로 연간 전기소비량 15㎾h를 넘지 않는 '패시브하우스'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보봉 내에서도 건축사 '롤프디시'가 설계한 태양주택단지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특히 이곳을 안내한 프라이부르크 미래연구소 마이어 대표는 패시브하우스로 설계된 자신의 집안까지 기자들을 안내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그가 안내한 태양주택단지 내 사무공간이나 일반주택 모두 원칙은 하나였습니다. '단열' '한번 들어온 빛과 열은 절대 뺏기지 않는다'는 거죠.

더운 여름날 원칙은 정반대죠. '빛과 열이 들어오지 않게 한다.'

이 역시 단열 원칙 속에 포함되는 거죠.

앞으로 소개할 모든 에너지 자립 주택의 공통된 출발점이 단열이었습니다. '단열' '단열' 이번 취재 기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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